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常識조차 조롱당하는 '위험 사회'

바람아님 2018. 5. 19. 08:35
문화일보 2018.05.18. 12:30



드루킹 사건 ‘면죄부 수사’도
특정인의 特檢 수사 제외도
이성적 아닌 反상식의 억지

수사지휘 항명은 檢 사상 초유
정상과 非정상 헷갈리기 일쑤
그러니 테러犯까지 영웅 행세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법률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상식(常識)을 규범화·조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치(法治) 사회는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인 셈이다. 상식이 무너진 사회에선 법치가 허황한 수사(修辭)일 뿐이다.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지 여부가 정의와 불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가르는 기준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성과 논리보다 야만과 억지가 횡행하는 ‘위험 사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으로 심각하다. 상식조차 붕괴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른바 ‘드루킹 사건’ 수사도 그런 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면서 필명 ‘드루킹’으로 인터넷 댓글 조작을 통해 여론을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나 구속된 김동원 씨와 문재인 대통령 측근인 김경수 전 민주당 의원이 예사롭지 않은 관계라는 사실은 갈수록 더 뚜렷해지고 있다. 드루킹은 ‘탄원서’ 제목의 옥중 편지를 통해 “댓글 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김 전 의원 주장을 적나라하게 반박했다. 사무실로 찾아온 김 전 의원에게 ‘의원님 허락이나 동의가 없다면 저희도 이것을 할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여서라도 허락해 달라’고 했고, 김 전 의원이 승인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그럼 진행하겠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텔레그램 비밀방을 통한 자신의 ‘일일 보고’를 김 전 의원이 매일 확인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경찰·검찰이 ‘면죄부 수사’라는 지탄을 받을 만큼 엉터리로 수사해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여당은 한사코 김 전 의원을 특검(特檢)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려고까지 한다. 모두 반(反)상식의 전형이다.


김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 28일 드루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드루킹이 이끌었던 조직 회원인 변호사의 일본 센다이(仙臺) 총영사 임명을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드루킹은 “문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에 기여한 대가로, 문 캠프 대변인이던 김 전 의원이 인사를 약속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약속한 두 자리 중에 하나로 요구한 주(駐)일본대사 자리 청탁을 김 전 의원 측이 거절했고, 대신 오사카(大阪) 총영사직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음에 따라 또 다른 대체 제안을 해왔었다’는 취지다. 센다이 총영사는 한직(閑職)이어서 거절했다는 주장을 포함해, 김 전 의원이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하는 드루킹 진술의 진위(眞僞)도 당연히 규명돼야 한다. 이에 앞서 드루킹이 지목한 인사를 오사카 총영사 후보로 청와대에 ‘추천’했다고 뒤늦게 시인한 김 전 의원의 당시 해명 또한 해괴하다. 지난 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그는 “(다른 사람이 임명됐기 때문에) 문 정부 인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정상과 비(非)정상, 상식과 비상식을 헷갈리게 한 사례에 해당한다.


심지어 법원과 함께 법치 수호가 직접적 책무인 검찰 일각까지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현직 검사가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검찰 규정을 어긴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총장을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검찰 수사단은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에 대한 사상 초유의 항명으로 비치는 보도자료도 배포했다. 검찰 안팎에서 “수사단의 공무상 기밀누설로 볼 수도 있다” “검사들이 총장의 지휘에 불만을 품을 순 있지만, 의견 조율 과정까지 상세히 외부에 공개하며 문제 삼은 것은 법원 재판부가 판결문 논의 내용을 공개한 것과 같다” 등의 지적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런 식이니까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폭행한 ‘정치 테러범(犯)’도 죄책감은커녕 위세까지 부린다. 그는 검찰에 구속 송치되면서 “(내 얼굴을 신문 지면이나 방송 화면에서) 모자이크 처리하지 말라.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외쳤다. 그런 그를 일부 네티즌은 ‘열사(烈士)’로 부르며 ‘술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꼭 다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며 뒤늦게 사과하긴 했지만,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토론회에서 폭행하며 자해(自害) 소동을 벌인 범인을 두고도 마찬가지였다. 여당 지지자로 보이는 네티즌들은 그를 ‘영웅’이라며 ‘이것이 민심’ 운운했다. 이처럼 상식에 대한 조롱이 만연한 현실이 지속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게 마련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권력층부터 반상식 행태를 멈추고, 정상인 상식을 회복하는 일이 절실하고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