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5.25 양해원 글지기 대표)
양해원 글지기 대표
큰 사거리에서 멈춤 신호를 받았다. 비 오는 밤의 긴장 푼답시고 변속기 'P(주차)'로 하고
주차 브레이크까지 채웠는데…. 느닷없이 빵 소리가 나더니 쿵! 뒤차 운전자가 나직이 한마디 던진다.
왜 후진(後進)을 하고 그러세요. 어쩐지 남의 차 받아놓고 뭉그적대더라니.
변속기를 R(후진)에 놓고는 착각한 것이다. 이런 엉뚱한 사고, 말글살이인들 없으랴.
'하나뿐인 딸이 이억만리 독일에서 시집을 가도 참석하지 못한 부모는 고운 한복만 지어 보냈다.'
이억만리(二億萬里)? 만리(4000㎞)의 2억 배면 자그마치 8000억㎞, 빛의 속도로 한 달 가는 거리다.
'억만'이라는 단위도, 거리도 터무니없다.
'이역만리(異域萬里·머나먼 다른 나라)'와 아무리 소리가 비슷하다지만.
인터넷 뒤지면 이 말 들어간 뉴스가 와르르 뜬다.
'유족과 지인들은 모두 운구차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여 목례했다.'
눈 목(目) 자에서 보듯 '목례(目禮)'는 눈짓으로 알은척하는 일, 말 그대로 눈인사다.
이걸 목을 숙여 예를 갖춘다는 말로 흔히들 잘못 알고 있다.
조용히 고개 숙이는 인사는 '묵례(默禮)'라고 한다.
세상에 향기 남긴 구본무 회장이 공부거리도 남겨준 셈이다.
"내후년은 4·19혁명 60주년으로,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유관 단체들과 미리 준비하겠다."
올해(58주년)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2년 뒤인 2020년을 가리켜 '내후년(來後年)'이라 했다.
내후년은 '후년'의 다음 해요, 후년은 올해의 다음다음 해. 따라서 내후년은 올해의 3년 뒤를 뜻한다.
내년의 '올 래(來)'에 홀려 저지르는 실수 아닐까. 1년 차이 착각이면 무슨 일이 날지 모른다.
후진 충격 받은 뒤차는 어찌 됐을까. 범퍼 한구석이 살짝 어그러졌다.
어떻게 좀 봐주시면…. 엉터리 운전자의 구차한 소리에 그이는 선선했다. 그냥 가시죠.
고맙습니다, 냉큼 절하고 자리를 떴다. 열없게도 야반도주(夜半逃走)하는 기분이었다.
'야밤도주' 아니냐고? 사고가 별건가.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물상] '닻 침몰설' 영화 단체관람한 해경 (0) | 2018.05.26 |
---|---|
[노트북을 열며] 마크롱의 노동 개혁, 문재인의 일자리 정책 (0) | 2018.05.25 |
[만물상] 어느 수목장 (0) | 2018.05.24 |
[천자 칼럼] 수목장(樹木葬) (0) | 2018.05.24 |
[만물상] 인간 구본무 (0) | 2018.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