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21 박은호 논설위원)
소련 공군 장교 유리 가가린이 1961년 인류 처음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시속 2만9000㎞ 속도로 300㎞ 상공 우주를
날았다. 비로소 인간은 그의 탄성을 통해 '푸른 행성' 지구의 면모를 봤다. "지구는 푸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지구가 푸른 건 바다 덕이다. 파장이 짧은 파란색 가시광선이 물 분자H₂O에 부딪혀 산란(散亂)하면서
투명한 무색 바닷물이 푸른색으로 물들여진다.
▶하지만 물은 때로 '핏빛'으로 얼룩진다. 물 확보를 놓고 국가 사이 유혈 분쟁이 많았다.
1967년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지으려 하자 물 부족을 우려한 이스라엘이 폭격기를 보내 댐을 폭파했다.
6일 만에 끝난 이 '3차 중동 전쟁'으로 골란고원과 요르단강 서안 지역이 이스라엘 손에 들어갔다.
요르단강 물 확보가 지금껏 진행되는 중동 분쟁의 불씨가 됐다.
2013년 이집트가 나일강 상류에 댐을 지으려던 에티오피아를 향해 "우리가 물 한 방울을 잃는다면 당신네는
피 한 방울을 흘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세계적으로 200개 넘는 강이 둘에서 다섯 국가를 관통하며 흐른다.
이 공유 하천 유역에는 세계 인구의 30~40%가 산다.
누가 어떻게 물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분쟁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멕시코는 리오그란데강·콜로라도강, 중국·태국·베트남은 메콩강, 인도·방글라데시는 갠지스강
이용을 놓고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 역시 북한강·임진강 상류에 북한이 지은 임남댐·황강댐 때문에
해마다 홍수기엔 물난리를, 갈수기엔 수량 부족을 걱정하며 산다.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물 싸움을 벌여도 국가 간 분쟁 못지않게 심각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그랬다.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이 정읍천에 만석보를 세워 수세(水稅)를 걷자 분노한
농민들이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보를 헐어버렸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요즘엔 4대강 주변 농민들이 화가 나 있다. 경남 합천 창덕면 농민 46명이 정부를 상대로 최근 10억여 원
피해 배상 신청을 냈다. 4대강 사업으로 들어선 창녕 함안보에 물이 그득 담기면서 강 주변 지하수까지
덩달아 풍성해졌다. 그 지하수로 비닐하우스 농사를 잘 지어 왔는데 새 정부가 4대강을 뜯어고친다며
보 물을 빼는 바람에 지하수 수위가 떨어져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정부는 4대강 보 수문 개방을 더
확대하겠다고 한다. 강 주변 비닐 하우스가 수만 곳 된다.
이 농민들보다는 4대강과 싸우는 게 더 중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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