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作品속 LIFE

[내가 만난 名문장]공감 그리고 유대감

바람아님 2018. 10. 16. 07:17
동아일보 2018.10.15. 03:00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 최은영, ‘쇼코의 미소’


동갑내기 소유와 그녀의 일본인 친구 쇼코는 닮았다. 고등학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처음 만난 둘은 함께 지내는 일주일 동안 무언의 관계가 형성된다.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하는 듯한 처지가 서로를 당기고 짓누른다.


소유가 본 고등학생 쇼코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할아버지와 엄마를 변화시킨 아이였다. 차갑지만 그녀의 미소는 어른스러웠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 주고받던 편지가 끊길 무렵부터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던 소유는 쇼코를 찾아 일본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쇼코는 한없이 나약하고 부서져버린 모습이었다. 예의 바르지만 서늘한 미소를 되찾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쇼코에게서 그 미소를 보게 된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고 한다. 상처받기 싫은 마음, 결합되고 싶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되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내가 상대에게 어떤 의미가 되길 바란다.

박연경 MBC 아나운서
우리는 숱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유대와 공감이 바탕이 되는 관계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팽팽히 지탱되지만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끈은 끊어지게 된다. 관계의 단절이 주는 아픔의 무게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면 유대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선하다 못해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파고드는 요즘이다. 차 한 모금에 아쉬웠던 지난 장면이 스쳐 간다. 잃어버린 존재가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다.


박연경 MBC 아나운서


[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 관한 기사]

담백한 진실의 힘..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

연합뉴스 2016.07.13. 07:04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 좋아해요"

 "문체는 그냥 타고나는 목소리 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원래 약간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글을 쓸 때도 그렇게 쓰는 것 같아요."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문학동네)를 펴낸 신인 작가 최은영(32)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소설에는 다른 신인 작가에게서 보이는 기발한 상상력이나 실험적인 시도, 화려한 기교가 없다. 대신 그는 젊은 작가답지 않게 묵직한 직구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담담한 문체와 수수한 이야기는 처음엔 쉽게 눈길을 잡아끌지 않지만, 찬찬히 읽어 나가다 보면 작가가 그려낸 인간의 내면 풍경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마음 속의 어떤 부분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이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진실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최은영은 '쇼코의 미소'로 2014년 문학동네가 주는 '제5회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을 비롯해 이후 쓴 것들까지 7편을 묶어 이번 소설집을 냈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작가의 강점이 가장 잘 살아난 작품이다.

지방의 한적한 마을에 사는 여고생 주인공의 집에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교류 프로그램으로 온 쇼코가 1주일 동안 묵는다. 또래보다 조숙하고 예쁜 쇼코는 외할아버지, 엄마와 주인공이 사는 적적한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주인공은 영어로, 할아버지는 일본어로 소통하며 쇼코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쇼코는 보기와 달리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과 쇼코의 성장 과정을 통해 누구나 겪는 인생의 굴곡을 각각 다른 빛깔로 그려낸다. 두 사람의 고통은 어떤 지점에서 교차하지만, 서로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의 현재 모습만을 보며 열등감 혹은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히 쇼코도 그때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쇼코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쇼코의 미소' 중)


작가의 시선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역사에까지 미친다. 이런 탐구와 통찰이 그의 소설에 깊이를 더한다.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간극을,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는 우리 현대사에서 국가가 사회운동가들에게 자행한 폭력을 소재로 삼았다.


작가는 "한국은 과거사 정리가 잘 안 되고 국가가 그것을 없었던 일처럼 덮고 지나갔기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부모 세대가 겪은 일들인데 사람들이 너무 멀게 느끼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이런 얘기를 계속 쓰고 싶다. 소설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진부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마음에 와닿게 괜찮은 소설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줄거리를 생각하고 쓰기보다는 그때 그때 생각나는 대로 쓰는 편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존재만으로도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밝혔다.

mina@yna.co.kr


'쇼코의 미소'

저자      최은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2016.09.26
정가      8,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