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2.13 최경운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적폐와 보복 탓만 하고 있으니 새 시대가 온 것인지 의문
대중의 삶 변화 없으면 '실패한 혁명' 아닌가
최경운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사디즘(가학증)'의 어원(語源)이 된 사드(Sade) 백작은 프랑스 혁명 논쟁을 다룬
'마라, 사드'라는 희곡에도 등장한다.
반(反)혁명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던 사드는 이 희곡에서 프랑스 혁명 때 피를 부른
급진적 혁명 지도자 마라를 향해 이런 말을 내뱉는다.
'구두가 조이는 친구, 한 구절도 쓸 수 없어 절망에 빠진 시인, 고기가 안 물린다고 불평하는
낚시꾼이 혁명에 따라나섰는데 혁명 후에도 만사(萬事)는 그대로다.
여전히 구두는 조이고 시상(詩想)은 떠오르지 않고 물고기도 잡히지 않는다.'
대학 혁명론 수업 때 어느 노교수는
혁명을 하고도 사회 부조리가 여전하고 대중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실패한 혁명'이라며 사드의 이 대사를 소개했다.
얼마 전 이 교수께 물었더니 지금은 자신보다 더 유명한 교수가 된 한 학생과 1970년대 중반 혁명 논쟁을 하다가
이 희곡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당시 학생들이 혁명 '후(後)'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혁명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기억이 떠오른 것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댓글 조작 사건 1심 유죄판결에 여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최측근인 김 지사 판결문에는 유죄를 뒷받침하는 증거 못지않게 풀리지 않는 의혹도 한가득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에 답해달라는 요구에 여당 대표는 "감히 촛불 혁명 대통령에게…" 하며 눈을 부릅떴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혁명'을 외치는 이들의 이런 태도를 보며 여전히 구두는 조이고 시상은 떠오르지 않는
시인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양에서 '혁명(revolution)'이란 단어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에 등장하는 '회전(回轉)'이란 표현에서 나왔다.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우주관을 탄생시킨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혁명이란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의 심정이 이런 혁명에 대한 열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은 "구시대의 막내가 된 것 같다"고도 했다.
구태와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을 거론하며 "나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 놓고 자신들의 잘못에는 '적폐들의 보복' 탓을 하고 있으니 새 시대가 온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번 설 연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때 2만2000원짜리 '일반' 고속버스표를 간신히 구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탄 군복 차림 청년은 돈 아끼려고 일부러 이 표를 구했다고 했다.
전역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는 그는 "먼저 제대한 친구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해 인력 시장에 나간다"며
복학하는 게 기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현 정권 지지에서 20대 남자가 급속히 이탈한다는 '이남자 현상'이 빈말이 아니었다.
행정안전부가 작성한 '설 연휴 여론 동향' 문건을 보면서 정부가 이런 민심에 어떻게 대처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정부는 설을 앞두고 지역 사업을 위해 예비 타당성 조사 없이 세금 24조원을 투입하기로 발표했다.
그런데 행안부는 문건에서 '예타 면제 지역에선 일제히 환영'이라고 했다.
예타 면제 탈락 지역에 대해서는 전문가 제언이라며 '조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적극 홍보할 필요'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4대강 사업비 22조원이면 일자리 100만개가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민심을 잡겠다며 타당성도 따지지 않고 토목에 돈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사드가 '혁명 후에도 만사는 마찬가지'라 한 건 괜한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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