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01. 23:40
非현실적 한국 대통령, 反역사적 북쪽 우두머리
미국 독립기념일은 7월 4일이다. 워싱턴에선 불꽃놀이가 열리고 각국의 미국 대사관은 기념 파티를 연다. 미국 국민 대다수도 실제 미국이 7월 4일 독립한 걸로 알고 있다. 사실은 미국 독립기념일은 1776년 7월 4일 식민지 13개 지역 대표들이 모여 토머스 제퍼슨(훗날의 3대 대통령)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공식 채택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독립선언서의 날'인 셈이다. 미국은 그로부터 7년이 흐른 1783년 9월 파리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세계 역사를 흔든 주요 문서(文書)'로 대접받고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권리와 국민 주권(主權)의 원리를 간명하게 표현한 내용과 후대(後代) 역사에 미친 영향력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실례가 1945년 9월 2일 북(北)베트남 호찌민(胡志明)이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며 발표한 '베트남 민족 독립선언서'다. 이 선언서는 '모든 인민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造物主)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것은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인간(men)'을 '인민(people)'으로 바꾼 것이다.
어제 3·1 독립운동 100돌을 맞았다. 3·1 독립선언서가 태어난 날이다. 3·1운동의 의의(意義)는 '만일'이라는 단어를 넣어 생각해야 분명해진다. '만일' 3·1 독립운동이 없었더라면 상해임시정부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만주 일대의 무장 독립 투쟁은 대원(隊員)을 모아 버틸 수 있었을까. 나라를 잃은 지 10년이 흐르며 사그라지던 독립·자주의 혼(魂)과 기억이 다시 타오를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만일' 3·1 독립운동이 없었더라면 점령국 일본과 세계에 우리 민족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을까.
3·1 독립선언서는 미국 독립선언서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3·1 독립선언서에는 33명의 민족 대표 명단이 명기(明記) 돼 있다. 그러나 최초의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서명자 59명의 이름이 없다.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6개월 동안 비밀에 부쳤다. 3·1운동 당시 조선에는 일본 육군 2개 사단과 1만3000명의 헌병경찰이 그물을 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영국 군대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짧은 본문(本文)과 28개에 달하는 긴 불만 사항이 나열돼 있다. 불공정한 세금과 행정 권력 남용, 무역 제한을 거론하고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폭군(暴君)으로 규탄했다. 3·1 독립선언서는 일본의 불의(不義)와 약속 번복을 지적하면서도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원한(怨恨)이 쌓여가지 않도록 할 길'을 제시했다. 조선 독립이 동양 평화,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일본을 사도(邪道)에서 벗어나게 하리라는 전망(展望) 같은 것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없다. 1919년 세계 인구의 80%가 식민지 상태에 있었다. 3·1운동은 비폭력으로 1차 대전 승전국과 맞섰던 세계 최초의 독립 투쟁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남북 모습은 밤과 낮처럼 확연히 다르면서도 낮과 밤처럼 묘하게 등을 맞댄 듯했다. 북은 반(反)역사적이었다. 선전 매체 '민족끼리'는 "3·1 민족 봉기는 외세(外勢) 의존에 물젖은 상층부들이 구차스러운 방법으로 독립을 얻으려고 시도하다 실패했다"고 깎아내렸다. '김일성 중심 사관(史觀)'대로다.
한국 대통령은 비(非)현실적이었다. "친일(親日) 잔재(殘滓)인 변형된 색깔론과 빨갱이라는 표현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태극기 부대'의 발언을 거울에 비춰 뒤집은 듯한 내용이다. 미·북 회담 결렬 다음날 '비무장지대가 곧 국민의 것이 될 것'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 '한반도 종단(縱斷) 철도 완성되면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실현 앞당겨'라는 말 먼저 부푼 대통령의 기대가 그래서 더 허망하게 들렸다.
3·1운동 주역(主役)들이 지금 한반도를 굽어본다면 무엇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겠는가. 최소 8만명에서 최대 12만명을 수용하고 있다는 북한 5개 정치범 수용소일 것이다. 할아버지·아들·손자 3대가 북한을 세습통치 한다는 말엔 듣는 귀를 의심할 것이다. 이것이 100년 전 노예의 사슬을 깨뜨리려 궐기했던 조국의 모습인가 하고 몇 번 눈을 비빌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비현실적 판단은 고층 빌딩에 매달린 비계와 같다. 줄이 끊기면 국가와 국민이 함께 추락(墜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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