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강천석칼럼

[강천석 칼럼] '대통령님, 이런 장관들 따라 해도 되나요'

바람아님 2019. 3. 31. 07:05

조선일보 2019.03.29. 23:28

청문회에서 딴 사람 된 통일부 장관 후보 진짜 문제는 人性
지금 장관 후보 그대로 정부에 들어 앉히면 그게 採用 非理
강천석 논설고문

말은 부족한 듯한 게 낫다. 멋진 말을 헤프게 쓰다간 제 말 밟고 미끄러지기 쉽다. 모진 말일수록 아껴 써야 한다. 하늘 보고 침 뱉기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러나는 청와대 대변인을 보니 옛말이 그른 게 없다.

이 정권은 출범 22개월 동안 11차례나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쏟아냈다. 그런 사이 '정권의 입'이란 사람이 석연치 않은 거래에 손을 댔으니 비난은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론 쉰 중반에 들도록 여태 제 집 없이 떠돌았다니 짠한 생각이 없지도 않다. 만일 그가 반대편을 향해 말의 폭력을 휘두르는 데 조금이라도 자제력(自制力)을 보였더라면 어땠을까. 마지막에라도 허물을 퇴직금 헐어 집 살 돈 보탰다는 부인 탓으로 돌리지 않았더라면 또 어땠을까.

며칠 전 끝난 인사청문회의 종합 소감은 한마디로 족했다. 이런 사람들을 그대로 정부에 들어 앉힌다면 그게 바로 채용(採用) 비리(非理)라는 것이다. '어린이나 학생들이 혹시 따라 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부터 들었다. 다들 스타급(級) 이어서 MVP 대상을 좁히기 어려웠다.

통일부 장관 후보는 단연 돋보였다. 비판 언론과 야당이 결격(缺格) 사유로 드는 대북관과 북핵 소견(所見)은 그가 인사권자의 마음에 든 진짜 이유였던 듯했다. 천안함 폭침과 핵실험에 대응한 5·24 조치, 개성공단 폐쇄를 '바보 같다''자해(自害) 행위'라고 했던 사람이다. 이 정권 응원단이 '미국에 끌려가지 않을 뚝심 있는 적임자를 골랐다'고 박수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후 북한 경제가 오히려 좋아졌다'는 사람이니 미국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예상대로 '한국과 중국은 (핵을 포기하라고) 북한을 설득하기보다 (대북 제재를 재고〈再考〉 하라고) 미국을 설득하려 할지 모른다.'

그랬던 그가 인사청문회에선 싹 달라졌다. '천안함 폭침'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북 핵 제재 효과'에 대한 과거 발언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숨진 장병들을 위해 묵념을 드리는 모습은 숙연(肅然)하기까지 했다.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몇 가지 들어보라는 요구에는 끝내 함구(緘口)하며 소신을 지켜냈다. 비록 국회에서 이렇게 말을 뒤집긴 하지만 임명권자는 자신의 본심을 믿어주리라고 확신하고 북한엔 심기를 거슬리는 역린(逆鱗)은 어떻게든 건드리지 않으려는 충정을 알아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노선·정책에 맞는 사람을 택할 인사 재량권이 있다. 그러나 장관 후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이념·노선·정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면 사정이 다르다. 통일부 장관 후보는 인성(人性)에 문제가 있다. 인성 차원에선 대통령은 보통 또는 그 이상 되는 사람을 골라 써야 한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에게 위임된 인사권에는 이런 불문율(不文律)의 제약이 따른다.

입에 담거나 글로 옮겨서는 안 될 내용이지만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도리가 없다. 통일부 장관 후보는 얼마 전까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그가 정치적 입장이 다른 동료 교수를 향해 '씨X럴 개놈'이란 문자를 날렸다. 자기보다 스무 살도 더 위인 선배 정치인을 '씹다 버린 껌'이라고 부르고, 전직 대통령을 '여론 따라가다 X된 사나이' '위대한 c-ba 가카 만세'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SNS상으로 공공연하게 내지른 말이다. 상스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쉰 넘은 대학교수의 정상적 언동(言動)이랄 수 있겠는가. 자식을 키우고 손자를 본 입장에서 임명권자가 판단할 사항이다. 다만 결정을 내리기 전 '장관님을 따라 해도 될까요'라고 묻는 이 나라 초·중·고등학생들 눈동자는 떠올려봐야 한다.

따라 해선 안 될 사람이 통일부 장관 후보 하나만은 아니다. '집 걱정이나 이사 걱정을 하지 않도록 실수요자 중심의 안정적 시장 관리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말로 무주택자 심사를 헤집은 국토건설부 장관 후보는 벌써 국민 가운데 적지 않은 추종자(追從者)를 불러 모았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 교본(敎本)'저자 같은 인물을 고르고 검증한 인사수석과 민정수석 안목(眼目)은 여전히 남다른 데가 있다.

두 달 후면 문재인 정권 출범 2년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국민은 취임사의 이 대목을 잊지 않고 있다. 이 빛나는 말 때문에 지금 빚어지는 일들이 짧은 겉옷 아래로 삐져나온 속옷 마냥 더 흉(兇)해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