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시론>靑 아전인수와 '우물 안 외교'

바람아님 2019. 3. 19. 07:58
문화일보 2019.03.18. 12:00



하노이서 北요구 수용했다면

영변보다 많은 핵물질 방치하고

결과적으로 北 핵무장 돕는 셈

포괄적 로드맵 + 스몰딜 중재안

결국 北 단계적 상호주의 귀결

靑 아집에 국가안위 우려 커져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일요일인 17일 북한 비핵화 협상 관련 브리핑을 자청했다.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미국과 협상 중단 고려’ 회견에도 불구하고 미·북이 2017년 이전의 대결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며, 양측 모두 협상 지속 의사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등 북한에 대한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미국 측 약속을 포함, 여러 중요한 사안의 실질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그의 희망적 자평과 달리 하노이 회담은 ‘노딜’이란 결과가 말해주듯 비핵화 협상의 근본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회담 이틀째이던 지난달 28일 최 부상은 회담장을 떠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달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메시지를 내밀었다. 영변 핵시설의 ‘공동의 정의(a shared definition)’에 대한 답변이었다. 미 대표단은 김 위원장의 보다 분명한 답변을 요구했고 최 부상은 서둘러 “(영변의) 핵시설 모두를 포함한다”는 김 위원장 답변을 다시 받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영변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했다”며 하노이를 떠났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의 핵물질 생산능력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영변 핵시설에서 연간 1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플루토늄을 생산해 현재까지 모두 51∼58㎏(핵무기 6∼7개 생산 가능 분량)을 추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영변 시설은 이제 거의 고철 수준이고 핵심은 2000년대부터 비밀리에 건설해온 우라늄 농축시설이다. 현재 영변 핵 단지 내에는 연간 130㎏의 고농축 우라늄(핵무기 8∼9개 제조 가능)을 생산할 수 있는 6700개의 원심분리기가, 평안북도 강성에는 연간 240㎏의 고농축 우라늄(핵무기 15∼16개)을 생산할 수 있는 1만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돼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음 폐기 대상으로 제시한 영변 플루토늄 제조시설은 북한 연간 핵무기 제조능력(우라늄탄 23∼25개 + 플루토늄탄 1개)의 4%에 불과하고 최 부상을 통해 수정 제시한 영변 전체 핵시설 역시 북한 핵무기 제조능력의 36∼40%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협상안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은 외신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은 아무것도 주지 않고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받았다”며 “북한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당황스럽지 않았겠냐”고 오히려 북한을 두둔했다.


만약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요구에 따라 영변 핵시설 폐기에 상응하는 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일부 제재 해제 등에 합의했다면 결과적으로 영변보다 훨씬 많은 양의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방치하는 셈이 된다. 그 뒤 북한이 협상을 표류시키면 북한 핵무장을 사실상 도와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와 제재 해제를 동시에 진행하는 빅딜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방식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진정한 핵 포기 의지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즉 북한이 이 방식을 수용하지 않으면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뜻이 된다.


문재인 정부는 아전인수(我田引水) 발상에서 벗어나 미국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북한이 포괄적 로드맵에 합의하고 그 바탕 위에서 스몰딜을 통해 미·북 간 상호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최종 목표를 달성하자’는 청와대의 새로운 제안은 북한식 단계적 상호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포괄적 로드맵에 합의할지도 미지수지만 설사 그런 협의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비핵화 최종 시한이나 구체적인 일정표, 비핵화 조치 미이행 시 ‘자동 페널티’ 등과 같이 실행력을 담보할 합의안에 서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 정부는 이미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인 미국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일방적 구애를 펼친 북한조차 “미국의 동맹인 남조선은 중재자가 아니다”라고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가 문재인 대통령의 향후 역할이 증대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물 안에 살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 같다. 문재인 정부의 아집에 국민은 살림살이 걱정을 넘어 국가 안위까지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