割股奉君<할고봉군>떼어낼 할, 허벅지 고, 받들 봉, 임금 군. 허벅지 살을 베어 군주를 모신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을 모셨던 개자추(介子推)의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다.
진 문공은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숱한 고비를 넘겼다. 한 번은 위나라에서 쫓겨나 촉나라로 가는데 양식이 없어서 아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개자추가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국을 먹임으로써 그를 살려냈다. 이 일화가 '할고봉군' 4자성어로 전해내려 온다.
허벅지살로 부모의 병을 고친다는 할고료친(割股療親)도 비슷한 의미다.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자신이 25살 때 위독한 아버지를 위해 허벅지살을 베어내 구워드렸다고 적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고통 때문에 도저히 못하게 되자 "나 같은 불효자가 어찌 효자가 되랴"하고 한탄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도 아버지가 위독하자 왼손 중지를 그어 피를 약에 타 올렸다.
'할고봉군'을 탄생시킨 개자추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찬 음식만 먹는다는 '한식(寒食)'을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개자추의 허벅지살을 먹고 목숨을 부지한 문공은 이후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논공행상을 하면서 개자추를 빠뜨리고 주변에 간신배들을 등용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개자추는 노모를 모시고 말없이 '면산'(聃山)으로 은둔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은 여러 차례 그를 불렀지만 거부했다.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면산에 불까지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노모와 함께 타죽고 말았다. 문공이 슬퍼하며 명령했다. "앞으로 이 날에는 불을 사용하지 말라. 충신 개자추의 원령을 달래기 위함이다."
동지로부터 105일이 지나면 한식이다. 보통 24절기의 하나인 청명(淸明)과 겹치거나 하루 차이가 나는 것이 보통이다. 올해 한식은 청명 하루 뒤인 4월 6일이다. 한식이 다가오니 새삼 개자추가 떠오른다. 그가 허벅지살을 떼어내고 불에 타죽으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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