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20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크게 꾸짖는 엄마와 마주쳤다.
화가 많이 난 탓인지 그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듯 아이를 타박했다.
아이가 수긍했다면 멈추었을 목소리는 아이의 시큰둥함 때문에 더 증폭됐다.
"이게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잖아! 엄마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언젠가 들었던 정혜신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공감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타인에 대해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섯 살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나는 엄마 가슴을 부숴 버리고 싶어!"라는 말을 꺼내
엄마를 놀라게 한 사연을 들었다. 대개 엄마들은 이런 경우 아이가 한 '말'을 '판단'해 나무랐을 거라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엄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이에게 '왜 엄마 가슴을 부수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이는 엄마 가슴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 가슴 속에 뭐가 들어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이가 대답했다.
"밥하고 물. 그리고 하트요."
정신과 전문의 이즈미야 간지는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서 바람직한 육아 포인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신이 주신 아이(예수)를 잉태하고 낳아 키웠다. 결코 자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에서는 이처럼 자기 자식을 '타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인식이 있다면 '자식을 위해서'라는 일방적인 강요를 하지 않게 되고 '대체 이 아이는 어떤 인간일까?'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심으로 면밀히 관찰하게 된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의 또 다른 핑계일 때가 많다.
아이 때문에 체면 구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다.
사랑과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면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강요하는 걸 사랑이라 착각하기 쉽다.
이때 부모는 그저 학부모로만 존재하게 되고, 아이의 마음은 영원히 닫힌다.
나를 성찰하고 돌보는 육아(育我)가 진정한 육아(育兒)가 아닐까?
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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