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古典여담] 天下言哉

바람아님 2019. 5. 25. 08:34
디지털타임스 2019.05.23. 18:06

끄트머리 재(哉) 자는 어조사 재로 물음표 역할을 한다. '천하가 말을 하더냐?'는 의미로 해석된다. 천하는 말을 않는다는 것은 천하는 사계절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할 뿐 일부러 어떤 설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논어(論語) 양화(陽貨)편 19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느 날 공자가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이제 말을 안 하련다(予欲無言)." 그러자 제자 자공(子貢)이 "선생님께서 말씀을 안 하시면(子如不言), 저희들은 어떻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則小子何述焉)"라고 한다. 이때 공자가 한말이 천하언재, '하늘이 말을 하더냐?'라는 말이다. 자공을 비롯한 제자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공자는 이내 자신의 말을 부연 설명한다. 천하가 사철 운행하고(四時行焉) 만물이 생장하는데(百物生焉) 천하가 말을 하더냐?(天下言哉)


많은 고전학자들은 공자가 갑자기 '천하언재'를 말한 배경을 답답함의 토로에서 찾는다. 아무리 말을 해도 제자들이 말 속의 진리를 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의 표피적 의미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실망해서 했다는 것이다. 견월망지(見月望指), 달을 보라

고 했더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식의 태도를 훈계하기 위해 이런 비유적 표현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사실 진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전할 수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느낌, 깨달음, 감 등으로 이심전심으로 통하게 된다. 연꽃을 보임으로써 깨달음을 전했다는 석가모니의 염화시중(拈華示衆)과도 닿아있다. 최근 말의 홍수 시대다. 자기 말이 진실이고 참이라며 쏟아낸다. 작위가 도를 넘었다. 그러니 막말이 나오고, 거꾸로 진실을 감추는 말이 된다. 공자의 '나는 말을 안 하련다, 천하가 언제 말을 하더냐'라는 교훈이 곱씹어지는 시절이다.


이규화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