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양상훈 칼럼] 족구 선수가 축구 하는 것 같다

바람아님 2019. 5. 31. 05:04

조선일보 2019.05.30. 03:18

 

대통령 숙원 '주류 교체'
정통 전문가들 배제하고 半전문가 非전문가들을 안 맞는 자리 기용
축구 선수 마음 안 든다고 족구 선수 내보내면 국정은 어디로 가나
양상훈 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 쓰는 것엔 하나의 흐름이 있다. 관련 분야의 정통 전문가를 등용하지 않는다. 조금 안 맞는 사람들이 조금 안 맞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이 정부의 특징이다. 정부의 최대 정책이라는 탈원전 공약은 미생물 전공 학자가 주도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자력과 에너지 믹스(mix) 정책은 국가 산업 전반과 국민 생활 전체에 직결돼 있다. 서울의 통신구 하나에 불이 나도 수십만 명의 생활이 직격탄을 맞고 마비되는 세상인데 블랙 아웃(대정전)은 어떤 사태를 불러오겠나. 그런 국가 에너지 정책을 혁명적으로 뒤집는 일을 미생물 학자에게 맡겼다. 문 대통령은 이런 인사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사회복지 전공한 관료 출신에게 맡겼다. 원자력안전위는 원자력 전문가가 맡아야한다. 그래도 그런 기본은 무시된다.

노무현 정권 때의 청와대 정책실장이 말했듯이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가 경제 전체를 보는 거시 경제 안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첫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업의 재무 상태가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 경영학자였다. 기업 경영학자라고 거시 경제를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거시 경제를 다뤄온 사람들과 경험과 깊이가 같다고 할 수 없다.

경영학자 정책실장을 대체한 새 청와대 정책실장은 도시공학자다. 주택, 교통, 환경 등 도시 문제를 연구한 사람이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를 봐야 하는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고 지나치다. 청와대 전 경제보좌관도 경영학자로 기업 마케팅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청와대 첫 경제수석과 현 통계청장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문으로서 마르크스를 공부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이 어떤 시각으로 한국 경제를 보는지 궁금하다. 많은 통계학 전공자를 두고 왜 하필 마르크스 전공자를 통계청장으로 쓰는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 모두가 해당 분야의 훌륭한 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보좌관, 경제수석, 통계청장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청와대에서 경제 정책 담당자 중 유일하게 현 경제수석이 정통 라인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존재가 희미하다. 새 경제부총리도 거시 경제 전반이 아니라 예산만 주로 다뤄온 사람이라고 한다. 경제 관료 출신 한 사람은 "이분이 나중에 부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기획재정부 내에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안보실장은 안보 외교가 아니라 경제 외교로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고, 외교부 장관은 안보 외교 경험이 전무(全無)한 사람이다.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역할을 하는 안보실 2차장은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해온 통상 전문가다. 주미 대사는 경제 전문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북핵 외교 담당자는 대부분 안보 비경험자들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이것이 '정상'이다.

문 대통령의 인재 풀(POOL)이 좁아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고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주류(主流)'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탓이 클 것이다. 문 대통령은 "주류 교체가 숙원"이라고 했다. 반공(反共), 산업화, 보수 세력 등이 친일파의 잔재인 주류이고 이들을 청산하고 교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보기에 각 분야의 정통 전문가들은 반공, 산업화, 보수 세력 그 자체이거나 거기에 봉사해온 '적폐'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류를 교체할 정신적인 태도와 의지를 가진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재적소'는 그다음 문제거나 아예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소망이자 신념으로 누가 조언한다고 바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1980년대 운동권 비서진이 겹쳐져 있다. 이들은 근래 한국 역사에서 가장 이념화된 세대다. 반미·친북의 리영희를 스승으로 모신 1970년대 운동권 대통령과 1980년대 이념 과잉 비서진의 눈에는 비이념적이고 실용적인 정통 전문가들은 역사 의식 없는 기술자에 불과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주류는 시장(市場)과 대기업을 적폐로 보고 최저임금을 올려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파격적 주장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전·현 정책실장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전 정책실장은 대중(大衆)을 향해 '분노하라'는 책을 썼는데 이것이 신주류다운 태도와 의지다. 정통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결코 할 수 없다. 반(半)전문가나 비전문가들은 특이한 경제 이론에 정치를 섞은 그런 주장을 쉽게 할 수 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권의 주류 교체론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때로는 전문가 엘리트들의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주류 교체 인사를 보면 축구 선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족구 선수를 내보내는 것 같다.

양상훈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