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촛불 혁명과 좌파 독재

바람아님 2019. 5. 28. 06:22
문화일보 2019.05.27. 11:50



혁명 뒤 독재 등장은 역사 교훈
朴 탄핵, 혁명 아닌 민주적 과정

문 정권, 촛불로 탄생하지 않아
한국당, 문 정권 좌파독재 주장

개헌안·정책에 상대적 좌파 요소
‘촛불=혁명’억지는 의구심 자초


혁명(革命) 뒤에는 독재(獨裁)가 따라왔다.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교훈이다. 러시아혁명 뒤에는 레닌·스탈린, 중국 혁명 뒤에는 마오쩌둥, 쿠바 혁명 뒤에는 카스트로, 베네수엘라 혁명 뒤에는 차베스의 독재가 수십 년씩 이어졌다. 대부분 국가 경제가 무너지고 인민 생활이 피폐해지는 값비싼 ‘실험’으로 끝났다. 이란 이슬람 혁명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청춘의 피를 끓게 만드는, 봉건시대를 끝내고 근대를 열어줌으로써 진정으로 세상을 바꾼 18세기 프랑스혁명에도 공포정치와 독재가 뒤따랐다.


한반도에도 혁명이 있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은 3·1은 운동으로, 4·19는 민주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선 말 동학(東學)을 혁명으로 지칭하기도 하나 무기력한 조정과 외세 침략에 대한 농민들의 자발적 개혁운동이나 봉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반도 북쪽에서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항일 혁명’이 있었다면, 그 결과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세습 독재와 최악의 인권 탄압 및 경제 파탄이다.


촛불 시위는 혁명일까. 아니다. 2016년 말, 최순실 ‘국정 농단’을 초래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라는 전국적인 시위가 있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국회 의결과 헌법재판소 인용이라는 헌법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진행됐다. 후임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헌법 절차에 따른 정치 과정을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로 탄생했나. 그렇지 않다. 촛불 시위가 요구한 것은 박근혜 사퇴였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5%가 찬성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41.08%에 지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당시 받았던 48%보다도 적었다. 촛불 민심의 절반은 오히려 문 대통령 당선에 반대한 것이다. 촛불로 탄생한 권력은 따로 있다. 시위에 가장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인데, 문 정권에서 그 지분을 시끌벅적하게 행사하고 있다.


보수 우파 야당 자유한국당이 문 정권을 ‘좌파 독재’로 규정했다. 한국당이 어떤 고민 끝에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모른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발끈하는 것을 보면 아픈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우선, 문 정권은 좌파인가. 현대 정치에서 좌우를 나누는 기준은 시장경제다. 한국 정치에서는 친북이 좌파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재정 투입을 늘리고, 일방적 대북 유화책을 고집하는 문 정부는 한국당에 비해 상대적인 좌파다. 문 대통령의 실패한 개헌 추진안 전문과 본문에는 현행 헌법에 비해 좌파적인 조항이 많았다.


그렇다면, 문 정권은 독재 정권인가. 독재에는 여러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헌법·법률에 의하지 않은 권력 행사를 지칭하지만, 소수를 정점으로 한 배타적 정치, 민주 절차를 따르지 않는 자의적 권력 행사도 독재로 부른다. 선거에 당선돼 5년 임기를 수행하는 문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없이 탈원전·4대강 보 해체 등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의적 권력 행사 성격이 짙다.


촛불을 혁명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도 사회주의 혁명의 결과처럼 독재로 가겠다는 뜻 아니냐고 의심하게 만든다. 촛불을 명분으로 상대 정당을 ‘궤멸’하고, 100년을 집권하겠는 것은 다분히 독재적 발상이다. 또 열혈 지지자들을 앞세워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정치인·언론인들을 ‘반(反)촛불’이라고 집단 공격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에서 목격했던 독재적 행태다. 촛불을 혁명으로 규정해서 만들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문 정권에는 젊은 시절 혁명을 꿈꿨던 사람이 많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관성처럼 그런 꿈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정치는 혁명이 아니라 민생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아직도 혁명을 꿈꾼다면, 청와대와 국회를 떠나 광야로 나가는 것이 옳다.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 성공한 정권이 되려면 지난 2년의 실패를 교훈 삼아야 한다. 모든 것을 잘못하진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경제와 안보가 흔들리고, 국론 분열이 더 심해졌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촛불이 혁명이었다는 독선과 아집을 버리는 것이다.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면, 문 정권도 독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