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1세기,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지구촌 모든 국가들이 이웃처럼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 보면서 소통할 수 있고, 얼마든지 손쉽게 왕래할 수 있는 시대다.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경쟁의 대상, 경쟁의 단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인과 경쟁해야 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개인의 경쟁력에 앞서서 국가의 경쟁력이 강조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의 역할,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어떠한가? 74년전 해방 당시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경쟁력은 무엇이며,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하나로 불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과거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부족했던 대한민국의 약진을 견인했던 것은 뜨거운 교육열이었다는 말이 많은 공감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교육열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교육열을 통해 전체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그와는 별도로 자본과 기술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고,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이른바 개발독재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개발독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시대가 달라졌고, 현실적인 여건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1000달러를 목표로 하던 시대의 여건과 3만달러를 달성한 오늘날의 여건은 축적된 자본과 기술, 사회적 인프라 등에서 비교조차 어려운 것인데, 과거의 성공신화에 의지하려는 것은 넌센스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예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명암이 엇갈린 영국과 독일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전승국인 영국이 자본과 기술, 정보력 및 시장접근성 등에서 크게 유리한 여건이었지만 오히려 전후 영국은 쇠락하고 패전국인 독일(당시에는 서독)이 부흥하여 영국을 앞서게 된 원동력이 무엇일까?
영국의 실패는 자본이나 기술, 정보력 등과 같은 개별적 요소의 우위가 전체적인 국가경쟁력의 강화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탓이다.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18세기 이후 세계 제1의 강국이던 영국이 20세기 후반의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자본과 기술, 정보력의 유기적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에 실패했던 것이다. 반면 독일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를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여건이 바뀌면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1960~70년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 하에서 나름의 성공을 보였던 제도라 해도 21세기의 변화된 현실 속에서는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 국가 중심의 경제드라이브, 공무원 중심의 국가발전이 그렇다.
과거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공직자들이 근대화 과정의 주역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바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인재들과 한정된 자본을 집중시켜야만 했던 시기의 예외적인 제도가 인재 풀이 수백 배 확장되고, 자본은 수천 배 늘어난 21세기 대한민국에 적합한 시스템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모든 중요 사항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하고, 청와대에 가려서 정부와 여당의 존재감이 희미한 상황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따르려고 하고 있다. 변화와 개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정작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부분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고, 조만간 영국과 유사한 경험을 우리가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매우 걱정스럽다. 이런 문제야말로 여당과 야당을 초월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모두가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협의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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