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평>청년 희망 없는 나라는 미래 없다

바람아님 2019. 6. 19. 08:13
문화일보 2019.06.18. 12:30



BTS와 U-20 축구 성취 불구
청년세대 무력감 충분히 공감

‘제론토크라시’가 더 부추겨
文정부 장관 평균 연령은 60세

고령화한 유권자 지원책 인기
새로운 세대 성장 막는 악순환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말은 얼마 전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착안한 것이다. 영화에서 노인은 악(惡)에 맞서 싸워 악을 응징하는 보안관이다. 그가 맞닥뜨린 현대는 이해하기도 감당하기도 힘든 흉포한 세상이다. 감당할 수 없는 악에 직면한 이 보안관은 단지 시대착오적인 노인이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 전반, 아니면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세상에 대한 지혜를 가진 원로를 나타낼 것이다. 그들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정의와 윤리와 가치를 지키려는 노인이 아니라, 부조리하고 복잡하게 얽힌 이 세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예이츠의 시에서 가져온 제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노인을 돌보고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적·정책적 권고가 아닌, 세상의 부조리와 냉혹함에 대한 무력감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부조리하고 냉혹한 현실에 대한 무력감의 반복된 경험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수저론이나 헬조선 담론을 반복하려는 게 아니다. 이들 담론에 담긴 운명론적 요소의 문제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분명한 점은, 청년의 입장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겪어 보면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란 사실이다. 이들은 1990년대에 태어나 상대적 풍요 속에 자랐지만, 2000년대 불확실성과 경쟁의 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2010년 전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저성장 사회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 숱한 경쟁을 거치고 그만큼 많은 좌절을 겪어야 한다. 그나마 어렵사리 기회를 잡더라도 층층시하 위계에 눌려 숨쉬기도 어렵다.


영화에서 보안관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은퇴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은퇴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서로 다독이며 노력하다 재능 있고 운이 좋으면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큰 성취를 이룰 때도 있다.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거머쥔 축구 대표팀이나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 선수처럼. 하지만 그것이 노력만으로는 얻기 힘든 것인지도 잘 안다. 영국 웸블리 공연장에 14만 명을 불러 모은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만큼이나. 오히려 승리와 성공만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이 세상에서 주눅 들지 않으려고 청년들은 하루하루 작은 행복으로 스스로 격려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청년들과 세상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고령화의 여러 의미 가운데 중요한 것이, 보다 나이 많은 층에 권력이 몰린다는 점이다. 연장자의 지배(gerontocracy·제론토크라시)라는 말도 있지만, 정치적 권력이 특히 더 심하다. 현 정부의 장관 평균 연령은 60세를 넘었다. 60대가 가장 많고 40대는 아예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평균 55세보다 다섯 살이 더 많다. 제20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도 55세로 이전보다 높아졌다. 주요 정당 대표들은 모두 60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연장자 지배는 두 가지 문제점을 낳는다.


먼저, 유권자의 고령화가 연장자 지배를 가능케 하는 원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고령층 지원 정책이 청년층을 위한 정책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청년을 위한 정책을 논의하고, 설계하고, 집행할 기관이나 주체도 없고,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청년에 대한 이해나 관심도 그다지 높지 않다. 오죽하면 청년 대표가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정부가 바뀌어도 좋아지는 것이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충을 토로했겠는가?


다음으로, 연장자의 지배는 새로운 세대의 충원을 제약해 연장자 지배를 더 강화한다. 고위 관료와 정치 엘리트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시기는 정치적 구조 개편 시기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것은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을 받아들일 여지가 그만큼 좁아진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혁과 혁신이 과거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데 더 많이 초점을 맞추고 미래를 위한 준비나 장애물 제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는 평가가 있다.

청년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그 나라에 어떤 미래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