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6.25. 03:16
껌 씹을 땐 침 분비량 10배로.. 초고령사회의 장수 모토는 '씹어야 산다'로 삼아야
우즈가 경기에 임하며 껌 씹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샷을 어떻게 칠지 생각할 때도, 자신의 의도대로 볼이 가지 않을 때도 그는 입을 '조물닥'거렸다. 입을 벌릴 때 입 안에서 늘어진 껌딱지가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왜 껌을 씹었느냐?"는 한 언론의 질문에, 우즈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골프 의학 전문가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배고픔은 둘러댄 멘트라는 게다. '우즈 껌'은 계산되고 기획된 스포츠 의학 행동이라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서 껌 씹는 저작(咀嚼) 행동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준다고 나온다. 질겅대는 동안 뇌혈류가 25~40% 늘어난다는 조사도 있다. 껌 씹기 턱 운동은 두개골 바닥의 신경망을 자극해 각성도를 높인다. 사람들 중에는 불안할 때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떨기도 하는데 이때 껌을 씹으면 그런 행동이 준다. 껌 씹기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기에 집중력 싸움인 골프에서 요즘 선수들이 껌을 씹기 시작하고 있다. 유명 선수 필 미켈슨은 "껌이 뇌의 전두엽을 자극해 경기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골프 의학 전문가들은 우즈와 미켈슨이 씹고 있는 것은 '칸나비디올(CBD) 껌'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용 대마의 성분으로 각성과 진통 효과를 준다. 아직 도핑 검사 대상이 아니기에 스포츠 선수들이 껌으로 애용한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특정 성분의 무언가를 섭취하기 위해 씹으며 살아왔다. 칡넝쿨이 그렇듯 많은 천연 성분 식물 줄기가 삼킴의 대상이 아니라 씹기의 재료로 쓰였다. 운동선수 껌은 과학적으로 진화된 씹는 행위인 셈이다.
65세 이상 계층이 전체 인구의 29%에 이른 일본에서는 약국이 5만여개로 성황 중이다. 편의점의 나라 일본인데도, 약국이 편의점 수를 앞질렀다. 약국에 가보면 초고령사회 단면을 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구강건조증 개선제가 나와 있다. 나이가 들면 여러 이유로 침샘 분비가 줄어든다. 입마름이 심해져 구취가 나고,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가 안 된다. 세균 번식으로 치주염도 늘어난다.
그러기에 노인들은 구강 건조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 무기가 껌이다. 껌 안에 침샘을 자극하는 성분을 넣기도 하고, 물에 잘 녹는 칼슘 보충제도 넣는다. 껌 씹는 행위 자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보다 침 분비량을 10배 가까이 늘린다. 그 결과로 입속 박테리아의 증식이 줄어든다. 충치를 일으키는 산(酸)의 생성도 억제하여 균형을 맞춘다. 치위생사들은 칫솔질을 못 할 거면 껌이라도 씹으라 권한다.
껌은 구강 노쇠 진단에도 쓰인다. 껌 안에 색소를 넣고 어르신에게 딱 20번만 힘껏 씹게 한다. 이후 뱉어낸 껌 색깔을 보고 깨무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강도를 매긴다. 잘 깨물었으면, 껌 색소가 잘 빠져 색이 엷어지기 때문이다. 껌 안에 당분을 넣어 1분간 삼키지 말고 씹기만 하게 한다. 이후 입안에 머금은 침을 뱉게 하여 혈당 측정계로 침 속 당을 측정한다. 잘 씹으면 껌 속 당분이 많이 빠져나와 침의 당수치가 높아진다. 그런 '껌 검사'의 씹는 힘 측정에 따라 음식물 강도가 달라진다. 노인들은 같은 메뉴라도 자신에게 맞는 저작 강도 음식 제품을 선택해 먹을 수 있다. 껌이 고령 생활의 동반자인 셈이다.
껌은 이제 초고령사회 기능 진단의 도구이자, 손쉬운 영양소 공급처, 효율적인 스포츠 의학 전달체로 발전하고 있다. 풍선을 터뜨리며 노는 젊은 사람들의 심심풀이가 아니다. 건강장수를 꿈꾸는 모토로 보생와사(步生臥死)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이는 우리 말로 '걸살누죽'이라고 부른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장수 모토가 '씹어야 산다'라고 본다. 씹을 수 있어야 그 힘으로 걷는다. 누군가 실없는 얘기를 하면 껌 씹는 소리 한다고 하는데, 함부로 그렇게 말할 게 아니다. 씹을 수 있어야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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