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손가락 'X'

바람아님 2019. 7. 6. 22:33

(조선일보 2019.07.06 이동훈 논설위원)


이성 앞에 다리를 꼬고 앉으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고객이 비스듬히 앉아 팔짱을 끼면 마주 앉은 장사꾼을

신뢰할 수 없다는 표시다. 사람 몸짓엔 생각이 들어 있다.

'의사 표시'가 주업인 정치인들은 제스처로 의사를 표시하곤 한다.

집게손가락과 중지로 그리는 'V' 자는 처칠 때문에 퍼졌지만 처칠은 처음엔 뜻을 제대로 몰랐다.

승리의 V는 손바닥이 밖을 향하는 것이고, 거꾸로면 '죽이겠다'는 욕이다.

활을 쏘는 손가락에서 유래했다. 비서 설명을 들은 처칠은 국민을 향해 손바닥을, 독일을 향해 손등을 보였다.


▶폭군 네로의 엄지 제스처만 한 부정적 제스처가 또 있을까.

검투 경기 패자를 용서 않는다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렸다. '죽이라'는 뜻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직후 한 시민이 이런 제스처를 보여 논란이 된 적 있다.

트럼프는 거꾸로 엄지를 올리는 '엄지 척' 제스처를 유독 많이 쓴다.

트럼프는 종종 상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는데 '공격'의 의미가 담겼다. 힐러리와 벌인 토론회에서 그렇게 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독재자들은 제스처가 큰 경우가 많았다. 히틀러는 연습을 거쳐 오른손을 높이 드는 연설 동작을 만들어냈다.

무솔리니는 연설하다 마음에 들면 턱을 들고 배를 내민 자세로 몇 걸음씩 왔다 갔다 했다.

김일성은 연설하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는데 손자 김정은이 따라 한다. 대중을 제압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은 회의를 주재하면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휘젓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이 서류철을 끼고 나타나 책상 위에 소리나게 내려놓은 다음엔 '피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우리 정치권에선 손가락 제스처는 잘 쓰지 않는다. 표정과 몸짓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듣기 싫은 얘기가 나오면 다른 곳을 쳐다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눈을 감았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탁자를 내리치거나 상대를 쏘아보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그제 의원 총회에서 정부의 한·일 관계 대응을 비판하는 의원에게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들었다.

말이 길어지면 지도부가 '그만하라'는 뜻으로 눈에 띄지 않게 손짓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그 특유의 표정과 합쳐진 손가락 'X' 표는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다음 날 여당에선 "귀엽게 X 표시하신 것"이라고 했고, 'X' 표를 당한 의원은 "이견이 없다"는 해명 글을 따로 올려야 했다.

이 대표가 'X'가 아니라 손가락 'O'을 하는 모습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