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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칼럼]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설 '무기' 찾아야

바람아님 2019. 7. 10. 07:23

조선비즈 2019.07.09. 06:01

 

"정의는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다. 강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기원전 416년 아테네가 에게해 남쪽의 작은 섬 멜로스를 정벌하면서 내세운 논리다. 중립을 지키고 있던 멜로스에 대한 아테네의 침략은 아무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아테네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라며 무조건적인 굴복을 강요했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테네의 멜로스 정벌, 특히 전투가 벌어지기 전 양측의 협상에 대한 서술은 ‘전쟁사’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힌다. 멜로스는 도덕과 규범 등 여러 근거를 들며 자신들이 정의의 편에 서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아테네의 반박은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국제 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멜로스는 그리스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 뒤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전쟁은 간단히 승패가 났고, 아테네는 멜로스의 성인 남자들을 모두 죽였다.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았다. "당신들이 스파르타와 신들의 호의, 희망을 믿고 기댈수록 더 깊이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 그대로 멜로스를 파멸시켰다.


요즘 국제 관계에서도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시도 때도 없이 동맹의 뒤통수를 때리고, 사방에 ‘적’을 만들며 이를 즐기는 듯한 트럼프 정부의 우격다짐 외교가 그렇다. 조공과 책봉의 중화주의적 세계관에 젖어 있는 중국의 막무가내 외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완력을 과시하는 데 거침이 없고, 상대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제재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일본 정부가 국제 규범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덧칠을 했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사실상의 경제 선전포고와 함께 필요 이상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급소’에 비수를 들이대며 "죽을래 살래"식의 노골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


사전 경고 신호는 충분히 있었다. 그동안 양국 관계에는 상당한 파열음이 일었다. 일제 시대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후 정치·외교적으로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상하는 일이 많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일본이 상당한 명분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렇다 해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의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는 도가 지나치다. 일본 정부는 여기서 더 나가 1100개의 전략물자로 수출 규제를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국을 북한, 시리아, 이란 등 국제 사회의 문제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하겠다는 것이다.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벌이다 갑자기 흥분해서 죽자고 달려드는 모습이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 폭탄’을 남발하는 데는 나름 경제적 이유가 있다. 무역수지 적자 해소, 지식재산권과 미국내 일자리 보호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엉터리 해법에 난폭한 방식이지만 경제 문제에 대한 경제 정책적 대응으로 설명할 부분이 있다. 반면 이번처럼 정치적 갈등에 경제로 보복하는 것은 명백히 자유무역의 원칙에 어긋난다.

일본 정부도 이런 지적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느닷없이 한국이 대북(對北) 제재를 위반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물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분명한 근거나 증거 없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하는 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는 일본 정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 목적의 경제 제재는 대부분 적성국이나 국제 공인 ‘불량국가’가 그 대상이다. 한·일 관계를 이런 ‘막장’ 수준으로 몰아가는 게 일본에 무슨 이익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지만 국가 전략적 판단은 수준미달이다. 트럼트식 일방주의를 어설프게 흉내내다 정작 중요한 큰 그림을 놓친 듯하다


한국 정부의 정치·외교 역량과 정책 방향에도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사태 해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적전분열(敵前分裂)로 대응에 혼선을 빚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한국이 절대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이 되풀이되면 안된다.


국제 관계에서 힘의 논리가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 한국을 잘못 건드리면 잘해야 ‘피로스의 승리’가 있을 뿐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줘야 한다. 그리스 에피로스의 왕이었던 피로스는 로마군을 상대로 몇 차례 승리를 거뒀지만 그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입는 바람에 결국 당대에 패망하고 말았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한편으로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것을 비롯해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강력한 반격을 위한 우리만의 무기, 결정적 ‘한방’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당분간은 정부 정책의 초점을 여기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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