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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세상진찰] 제1저자 '친필 사인' 도대체 누가 했나

바람아님 2019. 8. 29. 07:32

조선일보 2019.08.28. 03:15

  

학술지 논문, 친필 사인은 의무
조국 딸 직접 했다면 신분 위장.. 장 교수가 대신했으면 문서 위조
진상 규명해야 의료계 명예회복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학술지에 논문을 보낼 땐 저자들 서명을 함께 보낸다. 친필 사인(sign) 제출은 의무다. 논문에 위조가 없고 저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서약의 의미다. 명망 있는 국제 학술지일수록 철저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단국대 의대 논문도 마찬가지다. 논문이 실린 2009년 대한병리학회지는 국제 학술지(SCIe) 등급이었다. 논문 게재는 모든 저자의 친필 사인이 제출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인턴 고교생의 제1저자 서명은 누가 했는가. 당시 조 후보 딸은 고1 여름방학 때 실험이 이미 다 끝난 연구 프로젝트에 2주 인턴을 했다. 설사 연구 기간 때 인턴을 왔더라도 고교생이 실험에 낄 수준의 연구가 아니었다. 유전학 분야 전문가 아니면 용어 이해조차 힘들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기자도 논문을 읽다 너무 어려워 중간에 포기했다. 조 후보 딸은 실험에 참여하지 못한 채 2주를 보냈을 것이다.

1년 반이 지난 고3 때 조 후보 딸은 실험을 이끌고 논문을 주도적으로 썼다는 의미의 제1저자가 된다. 한영외고생이 아닌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신분으로 위장한 채로. 논문 제출 때 조 후보 딸이 서명을 했다면, 자격 미달 제1저자와 신분 위장에 조 후보 측이 적극 동의하고 관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책임저자인 단국 의대 장영표 교수가 임의로 조 후보 딸 서명을 대신해서 제출했을 것이다. 문서 위조에 해당한다. 이후 장 교수는 제1저자 신분을 감추고 '가짜 서명'된 논문을 대한병리학회지에 냈다. 제1저자 신분이 드러날까 봐 단국대도 속였다. 아이가 열심히 해서 제1저자로 넣어준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하고 절차적으로 준비된 위조·위장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장 교수는 조 후보 딸이 고려대에 입학 서류를 제출할 때, 논문의 제1저자는 단국대서 인턴을 한 한영외고 학생 조양이었다는 확인서 내지 추천서를 써줬을 것이다. 논문 어디에도 제1저자가 한영외고 학생이라는 표기·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조 후보는 딸의 제1저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생아 연구에 성과를 쌓아온 장 교수가 일순간 자기 명성이 훼손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무슨 연유로 가짜 서명과 신분 위장을 동원하면서까지 조 후보 딸을 제1저자로 만들려고 그렇게 애썼을까. 합리적 의심으로는 조 후보 해명과 달리 '엄청 세게' 청탁을 받았지 싶다. 아니면 조 후보 딸과 동기인 아들을 위해 '인턴 논문 맞교환'과 같은 약속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교수 생활 23년 동안 38편의 논문을 쓰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무리수를 설명할 수 없다. 청문회건 검찰 수사건 제1저자 서명을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의료계는 이런 논문을 2주짜리 인턴이 썼다는 황당한 해명에 좌절과 분노, 모욕감으로 들끓고 있다. 진상 규명만이 의료계 명예와 자존심을 살려줄 수 있다.

저자 신분 위장과 위조는 앞으로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조 후보 딸 논문 사건을 계기로 저자 등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국내 학술지도 논문 제출받을 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저자 고유 식별 번호 오키드(orcid)를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해야 한다. 이는 연구자의 여권 같은 번호다. 책임저자뿐 아니라 논문에 참여한 모든 저자의 오키드를 제출하게 해서 저자 신분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2주 인턴 고교생의 국제 학술지 의학 논문 제1저자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