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9.08.28. 08:12
영조는 '개혁 군주'를 표방했다. 그는 반듯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3불 정책을 선언했다. 당쟁, 사치, 술을 금한다는 것이었다. 부녀자들의 요란한 머리 장식이 금지되고 수놓은 비단도 쓸 수 없었다. 제사상에 올리던 술까지 금했다. 왕은 위반자들을 엄히 처벌했다.
어느 날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술을 마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병마절도사는 각 도의 군사 지휘를 맡는 종2품(차관급)의 고위 관직이다. 왕은 친히 숭례문까지 나가 죄인을 심문했다. 오리발을 내밀던 절도사는 곤장 세례에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죄인의 목을 쳐서 장대에 걸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영의정 등 삼정승이 너무 과한 형벌이라며 만류하자 이들을 모두 관직에서 내쫓았다.
타인에게 추상(가을 서리) 같았던 영조는 자신에겐 춘풍(봄바람)이었다. 금주에서 자신만 예외였다. 그는 술 대신 소나무 가지로 담아 만든 송절차를 즐겨 먹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알코올을 지닌 엄연한 술이었다. 혼자 먹기가 미안했던지 왕은 신하들에게도 자주 권한 뒤 취해 비틀거려도 문제 삼지 않았다. 영조는 절도사를 처형한 그날 자신의 호위 무사가 며칠 전에 음주했다고 자수했으나 못 들은 척했다. 자기 측근에게는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1991년 경기도 부천에서 도로 확장을 위해 화유옹주와 남편의 합장묘를 이장한 적이 있다. 화유옹주는 영조의 열 번째 딸이다. 당시 딸의 묘에선 옥비녀, 청나라 수입 도자기 등 화려한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다. 누가 감히 역사를 숨기겠는가. 왕조시대도 아닌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내로남불이 횡행한다. 진실은 무덤 속의 유물처럼 언제가 반드시 발굴될 것이다. 그때 오늘
의 모습을 본 후손들이 무어라 하겠는가.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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