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종족주의'라는 한·미 양국의 숙제
중앙SUNDAY 2019.12.07. 00:21
화성·금성 출신 남성·여성처럼
여야 함께 사는 게 정치적 숙명
'하늘'은 여야 모두에 기회 줄듯
19세기, 20세기에 일본은 ‘근대화=서구화’라는 국제정치적인 시대적 압박에 기민하게 적응하고 대응했다. 조선과 중국이 갈팡질팡하고 갑론을박할 때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잽싸게 스스로를 서구 열강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우리나라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우리 지도층과 일반 국민은 본능적으로, 혹은 의식·무의식에 각인된 역사적 기억으로 말미암아 ‘근대화=서구화’의 2.0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미국화’에 거의 무조건 찬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들리지 않았다. 일본 덕분이다. 국권상실의 아픔을 다시 겪는 일은 없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근대화=서구화’의 성공에 아직도 취해 있는 일본은,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세계화=미국화’ 시대의 요청에 대응이 좀 부실한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영어를 잘 못한다. 또 일본 총리의 대한(對韓) 공격은 그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시장경제·기업경영, 또 미국이 그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여성주의·다문화주의를 한국만큼 적극적으로 열심히 수용한 나라는 흔하지 않다.
미국을 숨가쁘게 벤치마킹하다 보니 좋은 점이건 나쁜 점이건 미국발 현상이 우리 땅에서 덩달아 재현된다. 예컨대 레임덕 현상을 거론할 수 있다. 양국 모두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임기 말기에는 지도력의 공백을 피할 수 없다. 양국 대통령 모두 처량한 신세를 운명처럼 맞이해야 한다.
양국에는 또 탄핵이라는 논란이 많은 제도가 있다. 지금 도널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미국 정가가 뜨겁다. 일반적으로 한·미 양국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는 양국 대통령들이 탄핵의 그늘 밑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게 뉴노멀(new normal)이 될 수도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1992)는 한·미 양국에서 베스트셀러다. 요즘 한·미 양국의 여야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여야 지지자까지도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다.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우리가 ‘작은 중국’을 표방했듯, 우리나라는 지금 ‘작은 미국’이 된 것일까. ‘큰 형님’을 존경하면 나 또한 ‘큰 형님’을 닮게 된다. ‘큰 형님’ 나라에 좌파·우파 기독교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좌파·우파 기독교가 등장했다.
이상적으로는 상대편 정파의 좋은 정책을 보고 기뻐해야 할 텐데, 상대편의 실수·실언을 보고 기뻐한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상대편이 어떤 실수·실언을 했는지 확인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이는 우리나라 이야기이기 전에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해야 할 미국 이야기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 챙기는 ‘민낯을 드러낸’ 미국 이야기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실수·실언’이 어떤 ‘검은’ 의도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건, 망하건말건 일단 우리편을 결집해 정치적인 이익을 보겠다는, 극단적인 편파적 언행이라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치사에서 오늘의 ‘돌연변이’ 상황은 아마도 최초다. 양국에서 콘크리트 핵심 여당·야당 지지자들은 손뼉 치고 환호하지만, 온건파 여당·야당 지지자, 무당파 국민·유권자가 보기에는 ‘누가 누가 못하나’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당이 ‘야당 복은 타고났다’는 말도 있는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야당 또한 ‘여당 복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미 양국 양당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가운데 적대적 공존, 적대적 윈윈을 하고 있다.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는 뻔한 스토리라인의 무한 반복도 어느 정도는 의외로 통하는 것 같다. 친일·독재·종북·주사파 등의 단어들이 등장하는 내러티브는 앞으로 20년은 생명력을 자랑할 듯하다.
군주제 국가에서 천명(天命)을 받는 것은 군주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유권자가 천명을 수령한다. 왕조국가에서 왕이 항상 옳았듯,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항상 옳다.
대한민국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하늘이 어떤 명(命)을 주실지, 국민·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국민·유권자의 선택은 ‘황금분할’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한심한’ 여당과 야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 같다. 기회가 숫자로 5%인지 20%인지는 모르겠다. 상대편 정당을 궤멸시키겠다는 희망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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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수·진보 진영 극단적 대결.. 정치판 '분노의 물결' 넘실 [세계는 지금]
세계일보 2019.12.07. 19:01
트럼프 취임이후 나라가 두 쪽으로
정치인·유권자, 이념 다르면 적으로 인식
트럼프, 지지층만 생각하는 반쪽 대통령
정치지도자, 국민 분노 부채질하고 악용
2020년 대선 사상 최악의 '분노 선거' 예고
공화·민주당 트럼프 탄핵사태 놓고 혈전
양측 지지자도 상대 신념 절대 수용 안해
결국 민주당내 사회민주주의 세력 등장
기성 정치에 염증 비백인·젊은층 큰 지지
◆정치와 분노
분노는 흔히 대화의 통로로 불린다.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은 ‘내 말을 들어라’라는 메시지라고 제임스 에버릴 매사추세츠대 교수가 말했다. 분노하지 않는 시민은 정치를 외면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분노를 표로 연결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시민의 분노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이런 정치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CNN에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분노와 에너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CNN은 공공종교연구소(PRRI)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이 지금 서로 몹시 증오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35%, 민주당 지지자의 45%는 자신의 자녀가 지지 정당이 다른 가정의 자녀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 CNN은 “이제 미국의 직장에서 정치 얘기는 금기어가 됐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추수감사절에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금기어는 도널드 트럼프”라며 “누군가 트럼프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전했다.
미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정적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비리 의혹을 조사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군사 원조 등을 유보했다는 ‘우크라이나 게이트’ 의혹을 파헤치는 탄핵 조사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늦어도 연말 이전에 하원에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 뒤 이를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상원으로 넘길 예정이다. 이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에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회주의 등장
미국은 대통령 중심제 민주주의 모델 국가이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공화당의 우경화에 대응하려고 민주당에서는 ‘사회 민주주의’ 세력이 등장했다. 민주당의 차기 대선 ‘빅4’ 주자 중의 한 사람인 버니 샌더스 후보는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막판까지 경합했었다. 미국 정치권의 차세대 스타 알렉산더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최근 샌더스 지지 선언을 하고, 그와 함께 유세 현장을 누빈다.
또 다른 빅4 중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진보의 아이콘으로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최근 미국 정치의 양극화 문제를 다룬 특집 기사에서 “지난 5월 실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43%가 사회주의 색깔의 정책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당시 지지율 42%보다 높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50명으로 구성된 시카고 시의회의 시의원 중 6명이 사회주의자라고 가디언이 전했다. 사회주의는 기성 정치에 분노하는 비백인과 젊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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