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형을 감싸안은 모습으로 유명한 충북 진천군 초평호(초평 저수지)를 가기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로 미호천(세금천)을 가로지르는 진천 ‘농다리’입니다. 농다리는 충북유형문화재 제28호로 미호천의 빠른 유속과 풍부한 수량에도 천년을 버텼습니다.
농다리는 길이 93.6m, 폭 3.6m, 높이 1.2m로 지네 모양을 하고 있으며 편마암의 일종인 자석(紫石·붉은색 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리 위에서 보면 평평한 돌무더기를 쌓아만든 돌다리로만 보이는데, 옆에서 보면 크고 작은 돌들이 정교하게 얽혀 교각을 만들고, 넓고 긴 바위는 상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물살을 막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량이 많아지거나 유속이 세지면 바위 틈 사이로 물을 흘려보내며 여태껏 미호천을 지켜왔습니다.
이 다리는 1000년 전인 고려시대 때 축조됐다고 전해집니다. 고려 고종 때 권신(권세있는 신하) 임연이 놓았다는 설과 그의 누이가 놓았다는 전설 그리고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만들었다는 설까지, 오래된 다리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도 전해집니다. 다리 건너 미호천변은 1982년 댐 확장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농다리를 통해 구곡리와 왕래하던 마을이 있던 곳입니다. 천년을 넘게 주민들을 세상과 연결해주던 다리에는 ‘살아서는 농사짓기 위해 건너고, 죽어서는 꽃상여에 실려 건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삶과 밀접합니다.
2000년도부터 매년 5월이면 ‘생거진천 농다리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기도 합니다. 다리를 건너면 펼쳐지는 미르숲은 총 면적이 108만㎡에 이릅니다. 농다리를 건너 조성된 초롱길을 따라 걸으면 미르숲과 거대한 초평호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축제는 한참 지났지만 평일 겨울에도 농다리의 정취를 느끼기 위한 발걸음들이 이어졌습니다. 포근한 겨울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농다리 밑 바위틈에는 귀여운 얼음이 매달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진천을 지나실 때 겨울 농다리의 정취를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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