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9. 23. 09:30 수정 2023. 9. 23. 09:44(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7회>
한국어에 남아 있는 성리학의 용어들
한국의 정치인들은 절박한 순간이 닥치면 흔히 단식을 선언하고 드러눕는 카드를 쓴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주변에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결단”이라 치켜세운다. “살신성인”은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비슷한 취지로 맹자는 사생취의(捨生取義, 생명을 버려서 의를 얻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통 시대 유교 사회엔 그렇게 자기희생의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그럴 리(理)가 없다”나 “설마 그럴 리(理)가·····”와 같은 말이 일상에서 가장 상용되는 성리학적 표현이 아닐까. 합리적 이유도, 타당한 원인도, 부득이한 까닭도 없을뿐더러 이 세상의 이치에 어긋나는 부조리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설마 그럴 리가!”하고 한탄한다. 조선 사상사 500여 년 성리학의 훈습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한국인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이다. 그렇다면 대체 리(理)란 과연 무엇인가?
제아무리 고매한 성인(聖人)이나 위대한 지도자라도 절벽 끝에서 몸을 던지면 벼랑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자연 세계에서 중력은 항시적인 법칙으로 작용할 뿐, 변덕스러운 신처럼 인간의 개인사에 의지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중력은 물질세계 모든 사물의 조건이자 존재 원리일 뿐이다.
이상 설명한 중력의 법칙에 빗대보면 주희(朱熹, 1130-1200)가 말하는 리(理)의 의미도 쉽게 알 수 있다. 중력처럼 이 세상 어디에서나 작용하는 어김없는 법칙, 예외 없는 원칙, 조화로운 원리를 12세기 주희는 리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물론 그는 중력의 법칙을 알지는 못했지만, 이 세상에 항시적으로 작용하는 보편적 원리, 일반적 법칙, 일관된 원리를 직시하고 간파했다.
https://v.daum.net/v/20230923093024650
“설마 그럴 리(理)가!” 퇴계 이황(李滉), 최후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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