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2023. 12. 23. 00:43 수정 2023. 12. 23. 01:27
손병두의 ‘IMF위기 파고를 넘어’ ⑤ 험난했던 반도체 빅딜 비화
1997년 11월 21일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신청으로 본격화된 ‘IMF 사태’를 일컬어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하는 건 그리 심한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날씨마저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났습니다. 30대 그룹 중에 11개가 해체되었고 성장율은 순식간에 -5.1%(1998년)로 고꾸라졌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고 IMF 요구에 따른 타율적 개혁을 강요받았습니다. 26년이 지났습니다. 녹록치 않은 안팎 상황은 다시 추운 겨울이 올 수 있다는 있다는 경고음을 냅니다. 노동개혁, 금융개혁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은 ‘빅딜’이라 불린 산업 구조 개편의 밑그림을 그리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IMF 위기 극복 과정의 한 가운데 있었던 사람입니다. 손 부회장의 회고를 빌어 IMF 위기가 남긴 값비싼 교훈을 돌아봅니다. 〈편집자 주〉 |
나는 LG 그룹이 전자산업을 하는 한 반도체는 꼭 필요한 것이고 그걸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LG반도체와 현대반도체가 빅딜 대상으로 된 이상 이를 합리적으로 풀어갈 묘안이 없을까 궁리했다. 그리하여 낸 아이디어가 LG와 현대가 50:50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LG의 청주공장과 현대의 이천공장은 지금처럼 각사가 그대로 운용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과 신규투자만 지주회사에서 결정하면 과잉투자 문제는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계안 현대 전무도 그 안이 좋겠다고 동의했다. 구자경 LG 회장을 찾아가서 설명했더니 “구씨와 허씨가 동업해서 사이좋게 지내오고 있는데 정씨(현대)와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안을 가지고 강봉균 경제수석을 만났다. 강 수석은 “50:50은 안 된다”며 반드시 경영주체를 정해야 한다고 했다......반도체는 첨단기술인데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업종 아닙니까”라고 하면서 한사코 7:3 비율로 경영주체를 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어쩔 수 없이 양사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통합법인의 경영주체를 정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1999년 1월 6일 오후에 구본무 회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통합을 원치 않던 LG의 입장이 받아들여졌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 6시 뉴스에 LG가 반도체 지분 100%를 현대로 넘기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는 급히 LG 빌딩 구본무 회장실로 가서 “회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진짜 다 넘기기로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구 회장의 답은 이랬다. “청와대에 가 DJ를 만났더니 그 날 조간 신문을 내 앞으로 툭 던졌다. 신문에는 반도체 빅딜이 지연되어 뉴욕에서 외채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순간 ‘아 할 수 없구나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왕 넘기는 김에 100%를 다 넘기는 것으로 했다.” 뒤이어 내가 “아무 조건 없이 넘겼습니까?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구 회장은 “데이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고 답했다.
https://v.daum.net/v/202312230043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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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31216003435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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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3120900262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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