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4. 6. 7. 00:47
단색화 거장 윤형근과 청주
“예술은 심심한 것” 특유의 지론
잘난 체 않는 듬직한 미감 추구
죽은 지 수백 년 된 전나무에 충격
“나도, 그림도 대수롭지 않아” 각성
대학 졸업에 10년, 쉰에 활동 시작
묵은 발효음식 같은 작품 쏟아내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윤형근(1928~2007)이라는 화가가 있다. 그는 1991년 미국 미니멀아트의 거장 도널드 저드(1928~1994)를 서울에서 만났는데, 이때 이들의 대화가 재미있어 신문에 소개한 적이 있다. 저드가 물었다.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윤형근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느릿한 충청도 말투로 대답했다. “예술은 심심한 거여.”
배석했던 통역자가 ‘심심하다’는 말을 저드에게 설명하느라 고전했다. ‘심심하다’는 시간적 의미로 말하면 ‘지루하다’는 뜻이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면, 우린 심심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무런 목적도 없고, 규정된 틀도 없이 ‘심심한’ 순간이 있어야 예술적 창의가 일어난다. 예술은 특별하게 힘을 줘서 잘난 체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일상에 심심하게 스며들어 듬직하게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윤형근은 생각했다.
김환기 장녀 김영숙과 결혼
아니나 다를까. 윤형근은 심심한 도시 청주 태생이다. 충청북도 ‘청주’하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무색무취의 도시, 대전만큼이나 ‘노잼’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냥 노잼 도시가 아니라, 노잼으로 유명해지려면, 재미없음의 차원이 상당히 높아야 한다. 핫한 곳도 없고, 트렌드도 자주 바뀌지 않아야 하고, 느리고 심심하게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런 고장이 청주라면, 청주는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매력적인 곳인지도 모르겠다.
윤형근의 부인은 화가 김환기의 장녀 김영숙이었는데, 처음 결혼해서 시댁에 와보고, ‘내가 참 시집을 잘 왔구나’ 생각했단다.... 윤형근의 시간은 참 느릿하게 흘렀지만, 그래서 심심한 맛을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익혔다.
https://v.daum.net/v/20240607004728643
[김인혜의 방방곡곡 미술기행] 심심한 고향 청주 닮은 심심한 미학의 단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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