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1. 23. 00:42
[아무튼, 주말]
청와대를 비질하다
청와대의 낙엽은 유독 빨리 진다고 한다. 효자로 길을 따라 사랑채까지 일렬로 빼곡히 서 있는 은행나무는 그 노오~란 잎이 비교적 이르게 떨어지는 나무 중 하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서울 다른 지역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환경미화원들은 입을 모았다. “채광이 좋아서” 혹은 “터가 좋아서”라는 말도 있고, 한 미화원은 “나라님께 이른 가을을 선물하고 싶어서”라고도 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그 은행잎은 곧 노오~란 쓰레기로 바뀌었다. 비질을 시작하고 한동안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리던 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구나. 심지어 쓰는 동안에도 낙엽이 진다. 1년에 두 번 낭만 찾았다간 두 팔 다 떨어지겠다.
반복 노동에 지친 난 ‘송풍기 집착녀’가 됐다. 쓸면 떨어지고, 쓸면 떨어지고! “이제 바람개비 써도 되지 않을까요?” 오전 5시 30분쯤, 조깅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조깅하는 분들께 먼지 날린다고 야단맞는다”고 한다. 염 반장이 “낙엽이 안 쓸려 있어도 야단맞으니까 어서 치우라”고 했다. 반장님, 뭘 어떡하란 말입니까.
앞으로는 노오~란 은행잎을 볼 때마다, 낙엽을 치우는 사람들과 이날의 비질, 송풍기가 떠오를 것 같다. 가을이 저무는 소리. 사각사각, 휘잉~.
https://v.daum.net/v/20241123004201925
새벽의 낙엽 청소부...낭만? 그것은 예쁜 쓰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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