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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07] 어묵찬금(語嘿囋噤)

바람아님 2014. 6. 15. 07:41

(출처-조선일보 2011.05.2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세상사 복잡하다 보니 말과 침묵 사이가 궁금하다. 
침묵하자니 속에서 열불이 나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신흠(申欽·1566~ 1628)이 말한다.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의당 침묵해야 할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만 군자일 것이다
(當語而嘿者非也, 當嘿而語者非也. 必也當語而語, 當嘿而嘿, 其惟君子乎)." 
군자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말해야 할 자리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있다가,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면 소인이다.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말했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진실로 굳센 자만이 능히 한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대단히 굳센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
(當言而言, 固强者能之. 當默而默, 非至强不能也)." 
굳이 말한다면 침묵 쪽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 
조현기(趙顯期· 1634~1685)도 
"말해야 할 때 말하면 그 말이 옥으로 만든 홀(笏)과 같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면, 그 침묵이 아득한 하늘과 같다
(當語而語, 其語如圭璋. 當嘿而嘿, 其嘿如玄天)"고 했다.

공자가 말했다. 
"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할 말만 하고, 공연한 말은 말라는 뜻이다. 
'맹자'"진심(盡心)" 하에는 이렇게 적었다. 
"선비가 말해서는 안 될 때 말하는 것은 말로 무언가를 취하려는 것이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낚으려는 것이다
(未可以言而言, 是以言餂之也. 可以言而不言, 是以不言餂之也)." 
꿍꿍이속이 있을 때 사람들은 말과 침묵을 반대로 한다.

김매순(金邁淳·1776~1840)의 말이다. 
"물었는데 대답을 다하지 않는 것을 함구[噤]라 하고, 묻지 않았는데도 내 말을 다해주는 것은 수다[囋]라 한다. 
함구하면 세상과 끊어지고, 말이 많으면 자신을 잃고 만다
(問而不盡吾辭, 其名曰噤, 不問而惟吾辭之盡, 其名曰 . 噤則絶物, 則失己)." 
정경세(鄭經世·1563~1633)는 호를 일묵(一默)으로 썼다. 
쓸데없는 말 만 마디를 하느니 차라리 내처 침묵하겠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른 처신이 어렵다. 
말과 침묵, 둘 사이의 엇갈림이 참 미묘하다.



<각주>

어묵찬금(語嘿囋噤) ;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語(말씀 어) - 말씀, 말, 이야기, (새, 벌레의)소리, 논어(論語)의 약칭(略稱)

嘿(고요할 묵) - 고요하다. 말을 아니하다

囋(기릴 찬,지껄일 찰) - 기리다, 찬양하다(讚揚--)

噤(입 다물 금) - 입 다물다, 닫다, 열린 문짝을 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