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6.1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산을 내려와 초당에서 묵다
도를 배운다는 것은 집착이 없다는 것
인연이 되는 대로 여기저기 노닐련다.
푸른 학이 사는 골짜기를 선뜻 떠나
흰 갈매기 나는 물가에 와 구경한다.
천리를 떠도는 구름 같은 신세로
바다 한 귀퉁이 하늘과 땅에 서 있다.
초당에 몸을 맡겨 묵고자 하니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구나.
與山人普應下山, 至豐巖李廣文家, 宿草堂
學道卽無著 (학도즉무착)
隨緣到處遊 (수연도처유)
暫辭靑鶴洞 (잠사청학동)
來玩白鷗洲 (내완백구주)
身世雲千里 (신세운천리)
乾坤海一頭 (건곤해일두)
草堂聊寄宿 (초당요기숙)
梅月是風流 (매월시풍류)
-이이(李珥·1536~1584)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풍암(豐巖) 이광문(李廣文) 초당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그는 자문자답한다.
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가?
도(道)를 배우는 것은 집착이 없는 것, 한곳에 머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인연이 있다는 것뿐이다.
오늘 잠시 동해안 바닷가 이 초당에 묵고 있다.
매인 데 없는 구름처럼 내일이면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매화나무 가지에 비친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년의 방황과 패기가 행간에 스며 있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0) | 2014.06.15 |
---|---|
정민의 세설신어 [107] 어묵찬금(語嘿囋噤) (0) | 2014.06.15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 엿보기와 남성의 성적 시선 (0) | 2014.06.14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 여성이란 성욕의 주체 (0) | 2014.06.13 |
정민의 세설신어 [106] 구차미봉(苟且彌縫) (0) | 201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