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통일한 뒤 한 고조는 1등 공신 한신(韓信)을 권력에서 밀어내고 역모로 몰아 죽였다.
죽기 전 한신(韓信)이 한 말이 이렇다.
"과연 그렇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를 삶고,
새를 다 잡으면 활을 넣어둔다더니,
적국을 깨뜨리고 나자 모신(謀臣)을 죽이는구나."
잡을 토끼가 모두 사라지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일 없어진 사냥개가 주인을 물까 염려해서다.
당나라 말엽,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켰다.
초토사(招討使) 유거용(劉巨容)이 거짓 패한 체 달아나자 황소가 속아 추격했다.
매복을 두어 역습하니 황소가 대패하여 강동으로 달아났다.
여러 장수가 승세를 몰아 추격해서 이참에 궤멸시키자고 했다. 유거용이 제지했다.
"조정에 어려운 일이 많고 사람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관리에게 상 주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일이 끝나면 바로 잊고 마니, 적을 남겨둠만 못하다(不如留賊)."
그는 한신의 교훈을 깊이 새겨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곧이어 황소가 다시 세력을 크게 일으키는 바람에, 그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명나라 말, 이자성(李自成)이 반란을 꾀했다가 거상협(車箱峽) 협곡에 갇혀 궤멸 위기에 처했다.
이자성이 큰 뇌물로 거짓 항복을 청했다.
토벌 책임자 진기유(陳奇瑜)는 사태를 낙관하여 뇌물을 받고 짐짓 퇴로를 열어주었다.
이자성은 간신히 살아나와 약속을 저버리고 군사를 정돈한 뒤 파죽지세로 북경까지 쳐들어갔다.
진기유는 제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웠다가 결국 죄를 입어 탄핵당했다.
이 일로 명나라는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다.
숭정제(崇禎帝)는 결국 황궁 뒷산에 올라가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했다.
다 잡은 적을 일부러 놓아주는 것은 쓸모를 과시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쓸모를 남겨야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놓아 줄 때는 분명히 토끼 한 마리였는데, 어느새 범이 되어 사냥개를 물어 죽이기도 한다.
토끼를 다 잡아 힘을 뽐낼 것인가? 상대를 남겨두어 내 값을 올릴 것인가?
자칫 다 잡았다간 삶아질 것이 두렵고, 남겨두어 값을 올리려니 뒤통수를 맞을까 걱정이다.
이 사이의 줄다리기가 또 미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