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중앙일보 2014-12-26일자]
김영희/국제문제 대기자
미국 오바마 정부가 쿠바와의 관계개선을 선언한 것은 옛 적대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개선 시리즈의 연장선에서였다. 오바마는 2012년 중국-동남아-서남아를 잇는 전략적 연결고리인 미얀마를 방문해 중국의 앞마당으로 통하던 이 나라를 중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내는 큰 외교적 개가를 올렸다. 의회가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푸는 일이 남았지만 미얀마는 미국으로 기울었다.
오바마는 2013년 9월에는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전화회담을 했다. 그것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 후 미국과 이란 정상 간의 최초의 대화다. 관계 정상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79~2012년의 미국·이란 관계에 비하면 딴 세상 이야기같이 들린다.
미국에 참담한 패전의 굴욕을 안긴 베트남과의 관계도 미·중 패권경쟁의 물결을 타고 사실상 안보협력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도발하는 영유권 분쟁의 여파다. 2013년 존 케리 국무장관의 하노이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했다.
이런 외교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지난해 시리아 사태 때 우유부단한 자세로 세계적인 리더십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결정적인 실책이 없었으면서도 미국의 무력감을 노출한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오바마는 더 큰 업적에 목말랐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해 국내정치에서는 대통령의 치적이 될 만한 입법은 바랄 수도 없게 됐다. 그는 선배 대통령들이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 쿠바라는 ‘콜럼버스의 달걀’에 착안했다. 지난해 6월 캐나다에서 시작된 미국과 쿠바의 비밀접촉은 지난 17일 53년 만의 국교정상화 선언의 역사적인 성과를 거뒀다. 미국·쿠바 관계의 정상화는 72년 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수준의 의미를 갖는 대사건이다.
오바마의 놀라운 쿠바 결단을 보고 자동적으로 나온 물음이 “다음은 북한인가?”였다. 적대국들과의 관계 개선 시리즈의 차원에서 보면 오바마의 외교 대장정은 북·미 관계 개선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오바마에게 그런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야망이 없을 수 없다. 그는 2009년 평화에 기여한 아무 업적도 없이 노벨 평화상을 외상으로 받은 사람이다. 그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소니에 대한 사이버 테러는 미국인들의 뇌리에 ‘위험한 불량국가’ 북한을 각인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만 해도 미국인들에게 먼 나라의 추상적인 큰 담론으로 비쳤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한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 굴지의 영화사가 북한의 위협에 맥없이 굴복하는 모습은 북한의 위협이라는 것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일상의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위협임을 확인하게 됐다.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소니다. 가상의 독재국가가 아닌 현실의 북한을 풍자한다면서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명의 김정은에 대한 암살 지령이 내려지는 내용이 포함된 영화라면 북한 사람들에게는 최고 존엄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오바마가 말한 표현의 자유가 북한에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북한의 물리적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 문화의 충돌인 셈이다.
엎질러진 물이다. 당분간은 어느 누구도 북·미 대화 재개는 말도 못 꺼낼 분위기다. 북한은 코너에 몰렸다. 중국과의 관계가 냉랭한 지금 북한이 기댈 곳은 러시아뿐이지만 그 러시아도 유가와 루블화 동반 폭락과 미국·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하겠다고 기세등등하던 미국도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북·미 관계 개선의 싹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카리브해에서 출발한 오바마의 외교 발걸음은 평양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의 아베도 총선 대승의 기세를 몰아 평양행 버스에 오를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남북한 정상의 러시아 방문을 초청했다. 사이버 전쟁의 분위기가 험악해도 한반도 주변 변화의 봄바람은 죽지 않았다.
북한은 시선을 남으로 돌려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북한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북한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전략과 지혜가 요구된다. 박근혜 정부가 북·미 사이버 전쟁을 기회로 잡아채 내년 상반기 중에 남북관계 개선에 물꼬를 트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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