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허경구 칼럼:한국 외교, 무엇이 문제인가② 중국 친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바람아님 2015. 4. 6. 22:48

(출처-조선일보 2015.04.05)


< ①편에서 계속>

둘째는 한국을 중국과 동일한 이해권에 넣음으로써 중국과 일본의 대결구도는 한층 더 선명해지고 일본이 중국과 대결하기 
위해서 벌이는 외교전이나 군비확장이나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더욱 더 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리라는 계산이다. 
일본이 한국을 “a. 가장 가까운 b. 가치를 공유한 이웃”에서 a를 빼고 b만 넣든지, b를 빼고 a만 넣는 식의 사소한 교활성을 
부리는 그 이유는 한국을 어떻게 하든지 한·미·일의 삼각체제에서 한국의 위치를 불안하고 어정쩡하게 만들려는 그 의도가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이러한 의도에 말려 일본과는 멀어지고, 중국과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미국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은 지금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이 한국의 
안보위치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 보이지 않는 암수(暗手)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일본의 이 암수에 걸려들어 이 암수가 교시하는 바에 따라 충실하게 그 외교행로를 밟아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 결과 미국과 보이지 않는 동맹적 균열을 겪고 있고, 일본과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적대관계로 치닫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이런 결과로 얻게 된 중국과의 밀착관계를 한국외교가 거둔 값진 승리로 착각하게 된 박근혜 정부의 
그 엄청난 외교적 착시현상이다. 한국은 한미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면 중국과 친해질 수 있는 만큼 친해져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의 친화관계가 미국과의 친화관계를 해치는 바로 그 지점까지 도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과의 친화관계를 해치는 대가로 중국과의 친화관계를 얻게 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바로 
이런 방향으로 외교를 전개해왔으면서도 그 잘못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우둔성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아귀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본의 한국카드는 지금까지 대성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이 한국문제를 중국과 연관시키고 북한과 연관시키고 미국의 
이익과 연관시켜서 거론할 때마다 한국은 미국에게 거추장스럽고 짐스러운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워싱턴에서 ‘한국 피로 증후군’이 차츰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그런 일본의 한국카드화가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다. 미국이 한국을 싫어하게 만들고, 한국을 버겁게 여기게 만들고, 그리고 나중에는 한국의 안보적 
안위를 미국이 지켜주는 동맹적 의무를 미국이 수행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으로까지 만드는데 일본의 목적이 있다면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곧 일어난다면 말이 아니다.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도록 일본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노력한다면 그것은 한국에게도 언젠가 큰 위기 상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강대국에 끼었다고 힘들어 할 것 없다”는 상황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한숨이 
나오는 얘기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정보를 토대로 해서 외교 정책을 펴고 있다”는 대통령의 얘기 역시 마치 
한국 외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같이 들려서 오히려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정보를 모르는 비판자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을 것 없다”는 말처럼 들리니 말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보를 가지고 외교를 한단 말인가. 궁정외교 시대도 아니고.
시진핑(앞줄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10월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에 참석한 아시아 21개국 정상들을 접견하고 있다./뉴시스
시진핑(앞줄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10월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에 참석한 
아시아 21개국 정상들을 접견하고 있다./뉴시스
한국은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 점 하나만은 분명히 알고 외교를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의 강대국으로의 재부상이 갖는 의미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강해졌을 때 또는 동아시아에서 그 국력이나 군사력이 비대칭적으로 강대해졌을 때 한국의 위치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그리고 특히 일본의 외교적 대응력이 갖는 의미를 한국이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멍하고 맹하게’ 대처해서는 큰일 날 것이라는 사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다시 한 번 커다란 외교 정책의 구상 속에 넣어놓아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 지정학적 밀착성을 어떤 경우에도 떨쳐버릴 수 없지만 이것은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들은 경제는 중국이요, 안보는 미국이라는 식으로 두 나라를 병치해서 얘기하는데 이것처럼 속 빈 소리는 없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게 안보적 의존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 때문에 미국의 안보에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에게 경제적 의존을 하는 만큼 중국도 한국에게 경제적 의존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국력 상 서로 의존도의 비중이 다를 뿐!

그런데도 넋없는 한국인들 중에서는 한국이 중국에게 갖는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 빈 소리를 해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14개 접경국가 중 한국처럼 중국에게 중요한 국가는 없다. 왜냐하면 결국은 중국이 존속하는 한 한국은 
중국과 그 문화적 그리고 문명적 연대감을 같이 할 마지막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과 친해진, 또 친해질 수 있는 
그리고 친해질 머나먼 장래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중국과 더디게 느리게 점진적으로 스텝바이스텝으로 친해지는 것이 
우리의 외교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조급히 다가서기 전에 중국이 먼저 다가설 때를 기다리고 다가선 다음에도 
더 기다려서 친해져도 늦지 않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과거 어떤 정부는 한 때 북한과의 친화정책을 추진해서 일정부분 성공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좌파 정부 이전까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일정부분 채찍과 당근 정책을 병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채찍을 완전히 포기하고 당근만을 썼을 때 그 후속정부가 대북정책에서 갖는 재량권을 완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그 후 정권은 100% 당근 정책만 쓰지 않을 경우, 북한으로부터 무력도발을 당하게 되리라는 위협을 받곤 했었다.

마찬가지 논리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관계의 친화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경사정책을 계속 추진할 
경우, 박근혜 정권은 다음 정권의 중국정책에 대한 재량권을 자의적으로 박탈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다음 정권이 중국에게 박근혜 정부가 해준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정책을 쓰게 될 때 중국은 한국에게 그 예의 
무지막지한 공갈과 위협을 조자룡 헌 칼 쓰듯 쓰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다음 정권의 대중국외교정책의 
재량권을 무슨 권한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해보기 바란다. 
다른 외교 정책은 다 그만두고라도 바로 그 문제 하나만이라도 똑바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낮은 
저공을 나는 연작의 근시안이 아니라 높은 창공을 나는 독수리가 가져야 할 조감 능력을 빨리 구유(具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