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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정상화 50년 맞은 韓·日관계… 세계 석학에 묻다] [2]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大 총장

바람아님 2015. 6. 5. 08:16

(출처-조선일보 2015.06.03 도쿄=김수혜 특파원)

"日서 아베 반대 목소리 커지게 韓·中이 도와야"

[2]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大 총장

日 유권자 절대다수는 일본의 군사적 팽창 반대
중국의 위협은 크게 느껴… 한국과 달리 美와 동맹 만족

한국, 통일을 하겠다는 건지 하면 좋다는 정도인지 모호
효과적으로 권력 유지한 北, 미친 정권 아닌 영리한 집단

北붕괴 바라는 주변국 없어… 한국, 통일 위해 친구 늘려야
韓·日 관계 좋아지면 日보다 한국이 더 이익

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71) 니가타현립대 총장은 영어와 일어로 논문을 쓰고, 독어·불어·한국어·중국어·러시아어로 구두(口頭) 발표를 한다. 한때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도 배웠다. 

일본인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 중 하나이자, 복잡한 현실을 숫자와 모형으로 간명하게 풀어내는 계량정치학의 대가다. 

"한·일을 둘러싼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듣기 좋은 말 따위 하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했다.

"중국은 30년 고도성장이 끝나고 한자릿수 성장중이다. 그게 중국의 뉴노멀이다. 

제조업 설비 과잉 때문에 수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민족간, 도농간 빈부의 격차가 커지는 중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강자들이 충돌하는 위치에 있는데, 한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 

아직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세계 어디서나 미국이 우위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최소한 태평양 절반과 아시아는 중국 세력권에 넣어야겠다고 맞서고 있다. 

일본은 긴 평화를 누렸지만, 이젠 세계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데 일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국민 과반수가 미국과의 동맹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국민 대다수가 미국과의 동맹에 만족한다. 이 점이 아주 다른 점이다. 

일본은 강력한 과학기술과 제조능력을 매개로 미국과 뭉치는 중이다."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대 총장은“전후 일본 국민 대다수는 전쟁을 반복하거나 군국주의 노선에 들어서는 데 줄곧 반대해왔으나 그런 목소리는 이상하게 한국 국민 귀에 안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대 총장은 “전후 일본 국민 대다수는 전쟁을 
반복하거나 군국주의 노선에 들어서는 데 줄곧 반대해왔으나 그런 목소리는 
이상하게 한국 국민 귀에 안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DB

이노구치 총장은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이념적으로 '중도 리버럴'이다. 

이상을 내세우는 것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읽는 걸 중요시한다. 

그는 여러 번 허를 찌르는 예측을 했다. 

2003년 미국이 막 후세인을 몰아냈을 때 

"지금 당장은 미국 일극 체제가 강고할 것 같지만, 

머지않아 문득 돌아보면 '아시아·유럽·미국 3극 체제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놓치고 있는 대목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도 그의 장기다. 

한국은 "일본이 군사대국화한다"고 경계해왔다. 

그는 "일본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군사적 위협은 과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 중국 공군이 굉음을 울리며 남중국해와 태평양 상공을 수시로, 위협적으로 비행한다.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면 중국과 한국이 즉각 반발한다. 

일본이 한 발짝 떼면 그게 곧 아흔아흔 발짝의 시작이라는 논리를 댄다. 

그런데 사실 일본 유권자 절대 다수는한·중이 우려하는 군사적 팽창에 반대다. 

중국과 북한은 한국을 공격한 전력이 있고, 그럴 수 있는 현실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과 북한보다 일본에 위협을 느끼는 것 같다."

그는 "한국인 과반수가 통일을 원하는데, 과연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물었다. 

한국과 북한을 둘러싼 외부 세력 중 북한의 붕괴를 진심으로 바라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중국과 미국에게 북한은 서로의 중간에 가로놓인 '완충장치'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무너지고 한국이 흡수하면 '미국 세력이 턱 밑에 왔다'고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이 잔존하고 한국도 미국과 멀어지면 중국 입장에선 미국과의 완충장치가 두 개가 된다. 

"요컨대 정말로 통일에 관심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고 보면 되느냐"고 묻자, 

이노구치 총장은 "한국도 통일을 정말로 하겠다는건지, 어디까지 진심인지 종잡기 힘들다"고 했다. 

'욕망만큼 준비도 치열한가' 하는 반문이 숨어 있었다. 

그는 "북한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미친 정권이라고 부르면 안된다"면서 

"그들은 누구도 그들이 존속하길 바라지 않는 적대적인 세계 속에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매우 영리한 판단을 거듭하면서 

효과적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집단"이라고 했다.

앞으로 10년 뒤 동북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이노구치 총장은 "중국이 아닌 미국이 세계 최고 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국내적으로 자치(自治)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커져있을 테지만 아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과 큰 변화 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일본 자위대가 세계 곳곳에서 미군을 후방지원하겠다고 했으니, 그때쯤 되면 '전후 첫 전사자'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일본이 직접적으로 군사 개입을 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긴 안목으로 보면 동북아 국가들이 무력충돌할 가능성은 낮다. 

한·중·일이 노력하면, 그리고 '천천히' 가면, 유럽연합 같은 3자 FTA를 이룰 수 있다. 

큰 흐름은 이 쪽이다. 

다만 2025년에 한·중·일 FTA가 이뤄져 있을 가능성은 아직 25~30% 정도다."


그는 "착각이 참화를 부른다"면서 

"과거 중국은 영국이 자기네한테 조공하는 나라라고 착각하다 아편전쟁에 졌고, 

일본은 통상밖에 관심 없는 나라라고 얕보다가 공격당했다"고 했다. 

지금 한국은 어떤 착각을 하고 있을까. 

이노구치 총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익 성향 망언'들과 관련해 

"일본 사회에는 아베 총리가 그런 발언을 해주길 바라는 소수가 있고, 아베는 때로 그걸 만족시켜주는 것 뿐"이라고 했다. 

"노래로 치면 '사이드 멜로디'다. 

한·중이 침묵하면 오히려 일본 국내에서 아베의 그런 언동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한·중이 지금처럼 목소리를 높이기 전까지는, 일본 사회에서 그런 사이드 멜로디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 그는 달콤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한·일관계가 좋으면 일본도 이익이지만 한국이 더 이익"이라고 했다. 

"일본에 한국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불가결하지는 않다. 기술적으로 일본이 한국에서 배울 게 많지 않다. 

안보를 위해 한·일이 연대하려는 노력이 절대로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한·일의 방식으로는 좀처럼 장애물이 없어지지 

않는다.  일본도 아시아 친구들과 협력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 노력은 안타깝게도 부족하다. 한국은 통일이라는 난제를 짊어지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친구를 늘려야 한다."



[이노구치 총장은…?]

한국어 등 7개 국어에 능통… '천재'로 불리는 정치학자

1944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도쿄대 교수를 거쳐 니가타현립대 총장에 취임했다. 

소장 교수 시절 냉전 이후 국제 관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치학, 국제관계론, 일본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일본 정치학자 중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