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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111명 "국정교과서 지지" 성명 발표/[박성원의 정치해부학]現代史가 국사학자들의 전유물인가

바람아님 2015. 10. 17. 10:46

[중앙일보] 입력 2015.10.16 

 
대학가와 역사 관련 학회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 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교수 111명이 한국사 국정교과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 등 전문가 모임이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해 지지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은 16일 오후 4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사 국정교과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성명에는 나승일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전 교육부 차관)ㆍ모영기 동원대 총장ㆍ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등 교수 111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역사 교육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길러주고,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안목과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훈과 지혜를 주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간 역사 교육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 편향에 휩싸여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역사 인식에 대한 혼란을 주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점에 정부가 역사 교육을 둘러싼 각종 분열과 다툼을 종식시키고 우리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국사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 선언에 대해선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정작 우리 역사 교육의 정상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국사학자들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주장하며 연달아 집단적으로 집필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며 "진정한 역사 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폐쇄적인 집단행동으로서의 대응이 아닌 각계각층과의 논의와 협력을 통해 역사 교육의 발전 방향을 공론화하고 논의를 이끄는 것이 미래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서의 진정한 역할이자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올바른 역사 교과서의 개발은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서 협력할 때만 이뤄낼 수 있는 국민적 과제"라며 "우리 사회의 역사학을 이끌고 있는 학자들이 나서서 역사교과서가 국민을 통합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힘써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아래는 전문>

미래 세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
우리 시대의 지성인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 교육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길러주고,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안목과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훈과 지혜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 우리의 역사 교육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 편향에 휩싸여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역사 인식에 대한 혼란을 주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시점에 정부가 역사 교육을 둘러싼 각종 분열과 다툼을 종식시키고 우리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 역사 교과서가 이념 대립과 정쟁의 논란에서 벗어나 이제는 바로설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역사 교육의 정상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국사학자들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주장하며 연달아 집단적으로 집필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역사학을 이끄는 지성인으로서 진정한 역사 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폐쇄적인 집단행동으로서의 대응이 아닌 각계각층과의 논의와 협력을 통해 역사 교육의 발전 방향을 공론화하고, 이러한 논의를 이끄는 것이 미래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서의 진정한 역할이자 소명이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의 개발은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서 협력할 때만 이뤄낼 수 있는 국민적 과제이다. 우리 사회의 역사학을 이끌고 있는 학자들이 나서서 역사교과서가 국민을 통합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힘써 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2015년 10월 16일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발기인 일동(가나다순)
강신천, 강인수, 곽병선, 곽창신, 권한용, 김경수, 김경자, 김경회, 김광래, 김남현, 김도기, 김병주, 김성조, 김수천, 김승철, 김열수, 김영재, 김용승, 김용직, 김원수, 김인영, 김장수, 김종호, 김태완, 김창석, 김한옥, 김한창, 김행범, 김헌규, 김형곤, 김현숙, 김희규, 나승일, 남덕현, 남성휘, 남정욱, 류병렬, 류여해, 류호섭, 모영기, 박명수, 박명순, 박병근, 박선규, 박성수, 박순우, 박성익, 박용규, 박용군, 박종열, 배본철, 백종구, 서민규, 송광용, 신동선, 신용수, 신형식, 안성수, 안성진, 양동안, 양일선, 양정호, 어명하, 유병진, 유석춘, 유재원, 이기숙, 이남순, 이상규, 이상정, 이영준, 이원순, 이원우, 이은선, 이재승, 이재원, 이정숙, 이존희, 이주천, 이춘수, 이칭찬, 이택휘, 이화룡, 장경윤, 장석민, 정경희, 정동준, 정영길, 정용각, 정완호, 정원식, 정영순, 정종희, 정혜선, 조연순, 주효진, 진동민, 최문용, 최병관, 최우원, 최윤철, 최진덕, 최태호, 한철희, 허경철, 허명섭, 허 숙, 홍선미, 홍성심, 황홍석, 황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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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의 정치해부학]現代史가 국사학자들의 전유물인가


동아일보 2015-10-16

박성원 논설위원

2013년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지학사 천재교육 등 5개 출판사가 펴낸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6·25전쟁 직전 38선을 경계로 잦은 충돌이 일어났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전쟁의 발발 책임이 남북한 양쪽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미래엔은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하였는가”라는 역사학자 김성칠의 일기를 머리글로 내세웠다.

일부 교과서는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같은 것을 조직해야 한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읍발언(1946년 6월)을 분단의 원인처럼 서술하고, 북한에선 실질적 정부 역할을 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이미 1946년 2월 조직된 사실을 흐려놓았다.

6·25전쟁이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자극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은 브루스 커밍스 등 미국 수정주의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수정주의는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스탈린의 극비 전문 등 실증적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엉터리였음이 판명됐다. 1990년대 모스크바 유학을 통해 이 자료들을 연구한 정치학자들에 의해 동시책임론이니 남침유도설이니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는 정치학계에선 일찌감치 폐기됐다. 그럼에도 국사학자들이 장악해온 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에선 아직도 북한의 남침을 명확한 사실로 기술하기를 꺼리는 듯한 대목이 적잖이 남아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1980년대 초에 쓴 글에서 “학자들이 우리 현대사를 다루지 않는 것은 책임의 방기이며 그 공백을 정치적 목적이 있는 세력이 이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1970, 80년대 민주화 투쟁이 대학가를 풍미하면서 국사학계에서는 운동권의 집중적 공격의 대상이 된 현대사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는 풍조가 강했다. 전두환 정권이 현대사 연구를 불온시하는 사이 이 분야는 재야 운동권 출신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이들 의식화된 386세대가 교수, 교사, 교과서 필자가 되면서 진보적 시각과 다른 방향에서 석·박사 논문을 쓰려 해도 적절한 지도교수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계사적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1990년대 이후 소비에트연방에서 버려지고, 중국에서 문화혁명 이후 찬밥이 된 이념형 교재들과 북한을 ‘내재적 관점’에서 이해하자는 역사관이 현대사 서술의 주요 진지들을 지배하게 됐다.

세계사의 흐름에 담을 쌓은 채 일국사(一國史)에 갇혀 있는 그들의 손에만 국사 교과서를 맡겨 둘 수는 없다. 지난해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이성규 서울대 교수(동양사학)는 “역사학자가 운동권 학술전사로 자처하고, 역사 논쟁을 서명운동과 시위로 해결하려는 풍조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학 국제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다양한 비교사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학문 간, 사상·이론 간의 자유경쟁을 통해 보편적 설득력을 갖는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본다.

현대사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다. 지혜와 학식이 풍부한 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한데 모여 대한민국의 오늘에 관한 공동의 정체성을 찾아나갈 때 친북이나 자학 사관도, 친일·독재 미화도 발붙이기 어려운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