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데스크에서] 베짱이 은행원의 억대 연봉

바람아님 2015. 11. 15. 08:09

(출처-조선일보 2015.11.14 이진석 경제부 차장)


이진석 경제부 차장 사진'살인적 노동 강도 부추기는 성과주의 확대 반대한다' 
'제 살 깎기식 과도한 성과주의 금융기관 직원, 국민 모두 골병든다'.

지난 5일 서울 명동 YWCA 4층 강당에서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금융노조)이 
이런 살벌한 문구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금융연구원이 개최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에 대한 세미나가 열리는 중이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 
시중 은행 임원들, 금융노조 노조원 등 100명 정도가 좌석을 채웠는데 분위기가 무거웠다.

이날 세미나의 주제는 연공서열 위주의 호봉제에 머물고 있는 은행권 임금 체계를 성과급 비중을 높여 선진국들처럼 
연봉제로 바꿔나가자는 것이었다. 금융노조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인데, 
요즘 유행하는 금융 개혁 바람에 기대서 그나마 성사가 됐다.

금융연구원 등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은행의 임금 체계는 이상한 점 투성이다. 
우선 미국이나 일본보다 임금이 높다. 미국이나 일본 은행들보다 생산성은 한참 뒤지는데도 그렇다.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무늬뿐이다. 
한국 은행원들의 임금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85%가 연공서열에 따른 기본급이다. 
게다가 평가는 시늉일 뿐이다. 지점이나 부서 단위의 집단 평가만 하고, 개인별 평가는 아예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지점에 근무하면 일을 잘하는 직원이든 고객에게 유난히 싹싹한 직원이든 게으름 피우는 직원이든 
똑같은 성과급 등급을 받는다. 
이렇기 때문에 '베짱이 은행원'들이 무임승차 할 수 있게 됐고, 은행의 경쟁력을 열심히 갉아먹는 중이다.

얼마 전 본지가 이런 베짱이 은행원들의 실태를 지적한 적이 있다. 기사에는 이런 사례가 등장한다. 
"경기도 성남의 A 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던 40대 고참 차장 박모씨는 지난 3년간 대출, 예금, 펀드 등 상품 판매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지각은 예사로 했고, 근무 시간에 온라인 바둑을 두는 지경이었다. 20~30분마다 담배 피운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농땡이'였다. 박 차장은 이러고도 1억원 정도의 급여를 챙겼다."

금융노조의 한 간부는 이날 세미나 막바지에 마이크를 잡았다. 
성과급 확산에 대해 "단기 성과에 대한 과당 경쟁을 유발해서 (결국에는) 은행의 건전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출 심사가 (깐깐하게) 보수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공격적으로 취급된다고 생각해보라. 
은행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라고 했다. 그는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하려는 것이 관치(官治)라고 주장했다. 
"힘없는 은행장들 팔  비틀고 죄 없는 은행원들 임금 삭감하는 게 정부가 말하는 금융 개혁이냐"라며 
"관치 금융 철폐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냥 고인 물처럼 살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글로벌 금융 경쟁이나 은행의 수익성 악화, 고객 불만 등에는 관심 없고, 성과급이니 연봉제니 하는 말도 듣기 싫으니 
그냥 이대로 은행원 4명 중 1명이 억대 연봉을 받도록 해달라는 얘기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