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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재' 풀린 이란] [上] 테헤란 호텔들 "유럽·中 기업인들로 꽉 차"

바람아님 2016. 1. 26. 00:51

조선일보 : 2016.01.23 03:00

['경제 제재' 풀린 이란] [上] 노석조 특파원 르포

"막혔던 거대시장 열렸다"… 건설·관광·車 '이란 러시'

- 외국 정부 관료들도 북적
비즈니스 타운 아직 형성 안돼 "방 없다… 125개 고급호텔 건설"
- 24~25일 '국제 항공 서밋'
국제사회 복귀 이란의 첫 행사… 26개국서 모여 관광상품 개발

"향후 1년 발주 공사 500억달러" 텅 비어있던 도심 사무용 빌딩들 해외 건설업체 사무실로 가득차
테헤란 車 400만대 절반이 '고물' 폴크스바겐·르노 등 진출 타진
해외 기업인은 공항서 즉석 비자… 이란 정부도 투자유치 적극 나서

테헤란=노석조 특파원
테헤란=노석조 특파원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의 유명 5성급 호텔인 '아자디' 로비는 22일(현지 시각) 오전부터 각국에서 모여든 건설사·상사·에너지기업 관계자들과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모두가 경제제재 해제 특수(特需)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유럽인이 가장 많았고, 전체의 30% 이상은 중국 사람으로 보였다. 일본인도 꽤 있었다. 한국인은 2~3명 눈에 띄었다. 60명 정도를 수용 가능한 로비에 빈 테이블이 없었다. 서서 얘기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100명을 훌쩍 넘었다. 이란은 비즈니스 타운 같은 곳이 따로 형성돼 있지 않아 중요한 미팅은 대부분 호텔에서 진행된다. 관계자들이 묵는 호텔에서 만나 식사하고, 로비에서 협상하는 식이다.

이날 아자디 호텔 매니저 시린 자흐란씨는 "450개 넘는 방이 전부 외국인 손님으로 찼다"고 했다. 자흐란씨에 따르면, 작년 7월 핵협상 타결 이전까지만 해도 방 예약률은 10% 수준이었다. 타결 이후 점차 방이 차더니, 지난 16일 제재 해제 발표 이후로는 새로 예약하는 것이 어려운 상태다.

아자디 호텔은 1979년 이란혁명 이전에는 하얏트 호텔이었다가 외국 자본이 철수하면서 1980년 아자디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란어로 '해방'이라는 뜻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이란에서 현재 125개의 고급 호텔이 건설 중"이라며 작년 착공한 호텔 수가 지난 세기 이란 내에 지어진 호텔 수보다 많다"고 전했다.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 맞은편 '명당'은 이미 이비스와 노보텔이 차지했다. 제재 해제를 예상하고 준비해 작년 9월 이미 문을 열었다.

이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지멘스는 15억~20억유로 규모 대규모 철도 공사 사업을 이란과 체결했다. 독일 폴크스바겐, 프랑스 르노 등 자동차 회사들도 이란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테헤란에서 운행되는 차량 400만대 중 절반이 차령 20년을 넘긴 폐차 수준이기 때문에 신규 수요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테헤란에서 비즈니스 통역을 하는 중국인 자오자싱씨는 "중국은 제재 기간에도 테헤란 지하철 공사 등 이란에서 많은 사업을 벌였는데, 제재 해제로 유럽 경쟁 업체들이 쏟아져 들어와 중국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면서 "이란 측과 관계를 더 다지기 위해 테헤란을 찾는 중국 사업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했다.

22일(현지 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 북부의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인 '에스티크랄' 호텔 로비. 각국에서 모여든 기업 관계자들과 공무원들이 로비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다.
22일(현지 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 북부의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인 '에스티크랄' 호텔 로비. 각국에서 모여든 기업 관계자들과 공무원들이 로비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다. /노석조 특파원

이란은 30여개 고속철 프로젝트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일본은 신칸센 수출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고급 패션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높다. 테헤란 북부 팔라디움몰은 명품 브랜드가 몰려 이란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핑몰이다. 지금도 11층 높이 건물에 1000대 넘는 주차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이란은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이 많아 외국 명품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테헤란 알라메타바타바이대학의 모함마드 골리 요세피 경제학 교수는 "이란이 중동의 상업 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를 인용해 향후 1년간 이란이 발주할 공사 규모를 500억달러(약 60조원)로 추정했다. 유재형 대림산업 테헤란 지점장은 22일 "오일이나 가스 관련 대규모 공사 발주도 중요하지만, 이란은 지난 5~6년간 모든 공사가 중단돼 인프라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인프라 건설 시장을 노리고 들어오는 기업들이 앞다퉈 사무실을 내고 있다. 유 지점장은 "테헤란 내 사무용 빌딩은 원래 공실률이 절반이 넘고 1~2년씩 비어 있는 곳도 많았지만, 작년부터 각국 기업들이 지사를 내면서 빈자리가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개황
이란 정부도 해외 기업인들을 맞이하는 데 적극적이다. 입국 절차부터 외국인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바꿔나가고 있다. 제재 이전엔 사업 비자를 미리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이란 현지 거래처 초청장만 있으면 공항에서 즉석 방문 비자를 바로 내준다. 주이란 한국 대사관의 안정훈 국토교통관은 "예전엔 만나기 어려웠던 이란 정부 관계자들이 핵협상 타결 이후부터는 경제 협력 얘기만 하면 쉽게 만나준다"면서 "이란도 최대한 외국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 후 첫 행사는 싱크탱크인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 주최로 24~25일 테헤란에서 열리는 '이란 국제 항공 서밋'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정권이 수립되고 바깥 세상과 단절된 이후 최대 규모 국제회의다. 26개국 항공사와 업계 대표들이 모여 이란 항공 노선과 관광 상품 개발을 논의한다. 이란은 이맘 호메이니 공항 주변 1만3700㏊ 일대에 공항 배후 시설과 상업·위락·컨벤션·관광지 등을 고루 갖춘 공항 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30년 넘게 이어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여파로 이란의 화폐 시스템은 아직 혼란스러웠다. 화폐가치가 수년 만에 400% 폭락해 1달러가 3만리얄을 넘어서자 계산 편의를 위해 구두용(口頭用) 별도 화폐 단위가 생겨나기도 했다. 공항 환전소 창구에서 100달러를 건네자, 점원은 이를 현지 화폐 단위인 '리얄'로 계산하다가 "리얄은 자릿수가 너무 많은 탓에, 리얄에서 자릿수 하나를 뺀 '토만'이란 단위를 더 많이 쓴다"고 했다. 10만리얄 지폐를 1만토만이라고 읽는 식이다.

택시를 타고 테헤란 시내를 달리는데 운전기사가 음악을 틀었다. 미 팝가수 존 덴버의 노래 '테이크 미 홈, 컨추리 로드'였다. 그는 "정부가 팝송이나 영화를 접하지 못하도록 하고 술도 못 마시게 하지만 사실 몰래 할 건 다 한다"면서 "자유가 없는데 경기까지 안 좋아져 생활이 팍팍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뭔가 해줘야 한다"고 했다. 경찰차가 배치된 시내 도로에 들어서자 그는 음악을 껐다.

이날 테헤란 북부 한 카페에서 만난 독일인 제약 사업가 나탄 메이씨는 "이란은 이슬람 성직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신정(神政·Theocracy) 체제'인 점만 빼면 정부의 국민 통제가 심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됐다는 점에서 북한과 닮았다"면서도 "하지만 이란은 핵협상 타결로 북과 다른 길을 걷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독일 사업가는 "동서로 나뉜 경험이 있는 독일은 남북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서 "미국과 오랜 갈등을 빚던 이란이 회생 기회를 가졌듯이 북한에도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같은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에선 제재 해제에 따른 기대감에 부푼 상인이 많았다. 페르시아 양탄자 상인 마흐무드씨는 "뉴스를 보고 '살길이 뚫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할 의욕을 갖게 됐다"면서 "이란과 다른 나라의 무역이 많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의류 판매상인 알리씨는 "그동안 서민들은 일자리도 없고 먹고살기 힘들어 새 옷을 잘 사입지 않았다"면서 "석유·천연가스 수출로 늘어날 외화가 서민 경제를 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