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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한국의 위기 극복 DNA 이인열 산업1부 차장

바람아님 2016. 4. 22. 07:14

(출처-조선일보 2016.04.22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대한민국이 왜 위기에 강했는지 아세요?"

얼마 전 조찬 모임에서 강연하던 금융인이 던진 질문이다. 
평소 한국 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우리가 위기에 강한 비결을 
"평소에는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위기를 만나면 모든 내부 싸움을 중단하고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는 물론이고 6·25 남침에 따른 폐허를 극복하고 
근대화를 이룬 역사가 이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 
그는 "문제는 우리 국민을 한 가지 목표에 몰두시켜 이끌 리더십인데, 
그것만 생긴다면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우리가 그럴까. 문득 8년 전 경험이 떠올랐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로 온 세상을 휘청이게 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막 불거진 직후였다. 
한국이 새로 등장한 위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무렵, 인터넷에는 이런 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IMF 사태 때 했던 금 모으기 같은 일을 하지 맙시다. 이제 보니 서민만 금덩어리를 내놨고 그를 바탕으로 
결국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됐으니까요." 
만약 그때 우리 사회가 이런 선동성 글에 휩쓸렸다면 한국 경제는 미국발 금융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침몰했을지 모른다.

최근 또다시 '위기에 강한 한국'에 의문을 품게 한 것은 현대중공업 노조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9개월 연속으로 무려 4조9000억원 누적 적자를 냈다. 
그런데 그런 회사의 노조가 올해 단체협상안을 내놓으면서 '임금 6% 인상에다 여름휴가 2일 추가, 
해외 연수 연간 100명 이상'을 요구했다. 
호황기에 노조가 협조했으니 위기를 맞아 회사가 모아둔 돈을 내놓으라는 게 이런 요구의 근거였다.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집단은 결코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산업은행 같은 '물주'를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지금 우리 조선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조선사들은 근로자 임금이 우리의 절반에 불과한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 고전하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은 그들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 견디고 있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역전될 것이 분명하다.

평생을 조선업에 바친 한 조선업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조선업이 소생하기 위해 노사가 함께 인정해야 할 명백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 조선업이 예전 같은 전성기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신입 사원부터라도 임금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 강연하던 금융인은 이렇게 말했다. 
"투자자 처지에서 볼 때 한국 조선업은 결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기대해본다. 
우리는 위기에 강했으니까." 
조선업의 부활, 
이것이 강력한 '한국의 위기 극복 DNA'를 입증하는 또 하나 역사적인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