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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혼돈의 극

바람아님 2016. 11. 16. 00:33
[중앙일보] 입력 2016.11.15 01:19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건용/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일단 시작되면 음악은 올라간다. 즉 고조된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OOO/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러보면 “사랑하는”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음악이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엔 방향을 바꾸어 마지막 “축하합니다”까지 내려온다. 짧지만 시작과 정점과 해결을 모두 갖춘 음악이다.

우리는 삶에서 안정을 추구하지만 안정적인 일상은 드라마 감이 되지 못한다. 걱정거리가 없는 어떤 직장인의 평탄한 삶을 보러 영화관이나 극장을 찾는 사람은 없다. 연극적 흥미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가 돌출할 때부터다. 예컨대 그 직장인이 갑자기 자신의 삶에 권태를 느낀다거나 솔깃한 제안에 욕심이 생겨 거액을 투자하는 때부터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예를 들자면 용맹한 충신 맥베스가 마녀로부터 “너는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불온하면서도 떨쳐내기 어려운 예언을 들은 때부터다.

교향곡이나 소나타처럼 긴 곡에서 음악은 다소의 곡절이 있지만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긴장이 고조된다. 고조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높이를 올리는 것, 강한 소리를 내는 것,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더 빽빽하게 음을 채우는 것 등.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조성의 중심을 흔드는 것이다. 처음에 안정되었던 조성은 빈번하고도 예상치 못한 조바꿈으로 점점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그에 따라 음악의 긴장이 고조된다. 이와 더불어 앞에서 우아하게 제시되었던 주제선율들이 변형되면서 토막이 난다. 곡의 정점에 가까워지면 그 토막 난 단편들 중에서 덜 중요한 것들은 탈락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만 남는다.

연극이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갈등이 깊어진다. 연극적 긴장감도 따라서 높아진다. 갈등과 대립이 노골화되면서 감추어져 있던 속 내용들이 들추어지고 드라마는 혼돈의 극으로 치닫는다. 카타스트로프다. 여기에 이르면 가장 깊은 곳에 감추어졌던 것들이 드러난다. ‘오페라의 유령’의 가면이 만인 앞에서 벗겨지고 남편보다 더 악독했던 맥베스 부인이 나약한 몽유병자가 되어 헤맨다. 여기에서 제대로 문제가 파헤쳐지지 않은 채 드라마가 봉합이 되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정화의 희열감)를 느끼지 못한다. 처절해도 상처의 근원이 파헤쳐진 후에야 비로소 청중은 긴장을 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혼돈의 극에 와서는 오히려 드라마가 분명해진다. 추리극이라면 이 부분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것이고 할리우드 영화라면 이 부분에서 주인공과 악당이 정면 대결을 한다. 이제 관객은 안다. “악당은 제거되고 곧 안정된 일상이 회복될 것이다.”

조성의 방황이 그 끝에 이르렀을 때 작곡가들은 처음의 안정된 조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화음을 준비한다. 딸림화음이다. 딸림화음은 으뜸화음을 유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 화음을 혼돈의 끝에 나타나게 해서는 오래 유지한다. 어떤 작곡가는 발전부의 후반을 모두 이 화음으로 채우기도 한다. 원래의 조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화음이라고 해서 이것을 ‘고향의 딸림화음(home dominat)’이라고 부른다. 이 화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청중들은 머지않아 안정된 조성이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고 기대한다. 이것이 음악의 클라이맥스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래 한 달여 국민은 예측할 수 없는 혼돈 속을 살아왔다. 우아한 줄 알았던 인격들과 견고해 보이던 제도들이 벗겨지고 파헤쳐지면서 놀라운, 대부분 추악한, 속 내용들이 드러나고 있다. 한편으로 나라가 뒤죽박죽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오히려 핵심으로 다가가는 듯하다.

연극이나 음악 작품은 다시 할 수도 있고 고쳐서 새로 만들 수도 있지만 나라의 운명과 우리의 삶은 함부로 다룰 수 없다. 단 한 번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과 음악에서 본 것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여 묻는다. 이 카타스트로프의 끝은 어디인가? 문제의 핵심은 끝까지 파헤쳐질 수 있을까? 그 끝에서 우리는 정화의 희열감을 느끼며 안도할 수 있을까?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를 그리로 이끌어줄 ‘고향의 딸림화음’은 지금 어디서 울리고 있는 것일까?


이 건 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