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1.16 홍승기 배우·인하대 로스쿨 교수)
지난달에 잡문집을 냈다. 점심 시간에 출판사 최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해거름에 답이 왔다. "낮술 하느라 전화 놓쳤어요. 아휴, 책이 너무 안 나가요."
전해 오는 소식은 우울했으나 목소리는 생기발랄하였다.
한 옥타브 높은 톤에 코맹맹이 소리까지 더해진 걸로 보아 오후 내내 마신 듯했다.
최 팀장은 이 책 저 책 모두 나가지 않으니 낙담하지 말라는 위로를 덧붙였다.
그런데 며칠 후, 2쇄를 찍을 테니 오타를 잡아 달라는 연락이 왔다.
1쇄를 워낙 조금 찍었으니 다 팔렸나 보다 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적게 찍으니 서점에 깔고 나면 재고가 없고, 각 서점에는 두세 권만 깔렸으니 어디에선가는 추가 주문이 있게 마련이며,
그래서 다시 2쇄를 찍고 나면 전국에서 반품이 들어온단다.
실제로 판매 실적은 얼굴을 붉힐 수준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동창들에 더해 사촌 누님까지 겁박해서 만든 결과였다.
교양서적 초판 인쇄 부수가 점점 줄어든다. 3000부가 2000부가 되더니 이제는 1000부가 보통이다.
이래서야 출판업계가 당해 낼 재주가 없지 싶다. 얼마 전 저작권법 개정안 공청회에는 출판사 사장님들이 단체로 몰려왔다.
개정안이 출판업을 홀대한다고 원망했다. 법 개정의 역사와 법리를 들이댔으나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출판업계의 위기의식이 훅 와 닿았다.
최 팀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잡문집을 사서 돌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동네 헌책방에서 오래전 출간한 내 책을 발견한 후 그런 결심을 했다.
출판사가 도산하여 구할 수도 없었던 책이라 반가워서 표지를 열었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얼른 표지를 덮고 본 사람이 없나 주위까지 살폈다.
표지 다음 쪽에 주절주절 사연을 적어 친하다고 생각한 이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그의 얼굴이 떠오르며 호흡이 거칠어졌었다. 한숨 돌리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을 담고 헤매느니 내게 돌아온 게 잘된 일이었다.
아침에 최 팀장에게 카톡을 찍었다.
"스테디셀러가 될 거예요. 미리 밥이나 먹읍시다."
스테디셀러라, 허풍이었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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