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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법원이 누구 편이냐고요?

바람아님 2017. 4. 26. 07:27
중앙일보 2017.04.25. 03:12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참 난감할 때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다. 법원은 누구 편이냐? 그 판사 어떤 성향이냐? 고향은 어디냐? 이해는 한다. 진영논리로, 지역으로, 세대로 극심하게 분열하고 대립하는 사회의 슬픈 학습효과다. 세상만사 모든 것에 일사불란한 피아 식별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이들이 감별에 곤욕을 겪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에 대해 정권의 시녀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단 이틀 뒤 같은 재판부가 국정원 댓글 의혹 관련 오피스텔 감금사건 야당 의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경우. ‘킬미힐미’나 ‘23아이덴티티’ 등 다중인격 주인공이 유행하던데 그렇게 이해하시려나? 최근 몇 달 동안은 영장전담판사들이 연이어 만고의 역적이 되었다가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가 하고 있다. 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권력의 시녀 또는 촛불의 시녀라고 번갈아 라벨을 붙이는 분들의 분류법에 따르면 묘하게도 판사들은 대통령도, 최대 재벌도 아닌 전직 민정수석의 시녀라는 결론이 된다. 시녀치고는 취향이 독특하다. 증거 부족으로 기각했다가 검찰이 증거와 혐의사실을 보완, 재청구해 발부된 경우 앞 판사는 시녀고 뒷 판사는 의인이 된다. 역시 배식도 그렇고 세상만사 순서가 중요한가 보다.


법원은 누구 편 선수도 아니고 그냥 룰대로 심판 보는 심판일 뿐이다. 그놈의 ‘법리’가 국민들의 법 감정보다 중요하냐며 분노하는 이도 많다. ‘법리’란 국민들이 대표를 통해 만든 법을 그동안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 왔는지에 대한 매뉴얼이다. 동네축구를 해도 심판이 오프사이드와 태클에 휘슬을 불지, 말지 이랬다저랬다 하면 패싸움이 난다. 쫀쫀하게 저번에는 어쨌고, 이번은 저번과 뭐가 다르고를 따질 수밖에 없다. 골프 중계를 보면 정말 쫀쫀함의 극치다. 볼이 1밀리 움직였네 마네, 몇 센치 옆에서 드롭해야 하네 마네. 심판이란 원래 경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런 쫀쫀하고 자잘한 것을 따지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고집불통들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최악은 누가 이기고 있는지에 따라 결론이 일사불란하게 바뀌는 심판들이다. 자기 팀이 백년 정도 늘 이기기만 할 자신이 있다면 그런 심판들이 편하다. 하지만 오늘은 이겨도 내일은 질지 모를 엎치락뒤치락 리그라면 사전 룰미팅 결과대로만 하는 고집불통들이 안전하다. 또한 윗목만 틀어쥐면 일사불란하게 통제 가능한 피라미드가 아니라 도무지 위아래가 없이 각자 알아서 하고 각자 책임지는 콩가루가 나을 것이다.


문유석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