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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남정욱의 명랑笑說] 핀란드 방위전략은 '全軍 戰死'… 누가 감히 넘볼까

바람아님 2017. 12. 23. 09:36

(조선일보 2017.12.23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남정욱의 명랑笑說]


핀란드 방위전략은 '全軍 戰死'… 누가 감히 넘볼까핀란드 방위전략은 '全軍 戰死'… 누가 감히 넘볼까


어쩌다 보니 우리에겐 자기 전에 껌이나 씹는 나라로 알려졌지만 핀란드는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1939년 핀란드는 소련과 105일 동안 끔찍한 전쟁을 치렀다.

그해 11월 말에 시작해서 이듬해 봄에 끝나 겨울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수치만 봐서는 핀란드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

당시 핀란드 인구는 300만 명, 침공해 온 소련 병력은 무려 100만 명이었다.


전차나 항공기 숫자는 더 절망적이다.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차는 32대 vs 6500대, 항공기는 114대 vs 4000대이니 그야말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이 출동한 셈이다(닭도 과했다. 병아리 정도가 적당하겠다).

소련의 전술은 단순했다. '전진해서 점령한다.' 아, 단서 조항이 하나 있기는 했다.

"너무 과다하게 전진하여 국경 넘어 스웨덴까지 들어가는 실수는 하지 말도록!"

이 전쟁에서 핀란드는 석 달 보름을 버텼다. 버틴 정도가 아니라 소련 전차 3500대를 박살 냈고 항공기 500대를 격추시켰다.

그 과정에서 별별 기발한 방법이 다 튀어나왔다. 세계 최초의 스키 부대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눈 속에서 튀어나온

하얀 군복의 핀란드 설상(雪上) 살상(殺傷) 부대는 소련 진영을 난타한 뒤 다시 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추위에 강한 소련군이지만 핀란드의 혹한은 차원이 달랐다.

보통이 영하 30도인데 1939년의 12월은 수은주가 수시로 영하 40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핀란드는 땅굴에 통나무 사우나를 설치해 놓고 전쟁을 치렀다.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결국 소련은 애초의 목적인 통째로

핀란드 삼키기를 포기하고 약간의 영토를 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00만 대군과 맞서 싸운 경이적인 전투력에

반한 히틀러가 추축국(樞軸國)에 반드시 핀란드를 가담시키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핀란드의 이런 결기는 옛 시절 무용담에 불과할까.

몇 해 전 핀란드를 다녀온 성균관대 정진수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기내 잡지에서 읽은 '국가 방위전략'이라는 안내문이라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힌다.

순서대로 적어보자면, 적군이 쳐들어오면(핀란드의 가상 적국은 러시아다) 일단 스키 부대가 국경으로 출동하여 전원 전사한다.

적군이 국경선을 넘으면 이번에는 보트 부대가 출동하여 전원 전사한다(핀란드는 세계에서 호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적군이 내륙으로 진입하면 본격적으로 핀란드 군 본 병력이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다.

적군이 수도인 헬싱키 앞까지 이르면 (우리로 치면) 수도방위군단이 출동하여 전원 전사한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적군이 헬싱키를 점령하고 나면 이렇게까지 해서 이 도시를 차지할 필요가 있었을까 회의감이 들게 한다.

제 정신이라면 이런 걸 방위전략이라고 세워놓은 나라와 전쟁을 하고 싶을까.

나라면 보도블록이 전부 금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절대 안 쳐들어간다.


모든 나라가 다 핀란드 같을 수는 없겠다.

그러나 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가짐 정도는 비슷하게 먹어야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닐까.

며칠 새 '타조'에 이어 '작은 나라'가 되고 나니 이게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앗! 작년 겨울에도 이 소리 들은 분이 자리에서 물러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