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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클릭] 벤 이즈 백 | 마약중독 아들과 크리스마스 24시간

바람아님 2019. 5. 14. 06:19
매경이코노미 2019.05.13. 09:00
드라마/ 피터 헤지스 감독/ 103분/ 15세 관람가/ 5월 9일 개봉
‘마약 청정 국가’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된 듯싶다. 최근 우리 사회가 마약 문제로 너무도 시끄럽다. 대마초를 넘어 ‘필로폰’이니 ‘물뽕’ 같은 중독성과 각성효과가 강한 마약이 문제시되고 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대중,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게도 익숙한 아이돌과 연예인이 다수 거론된다. 일부 특권층이나 상류층, 연예인의 문제만이 아닐 수 있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영화 ‘벤 이즈 백’ 역시 마약을 주 소재로 한 영화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마약은 어마어마한 조직 범죄원, 그러니까 갱스터나 슬럼가의 빈민들, 비주류 사회의 문제가 아니다. 크리스마스 연극을 준비하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 부부 사이도 좋고 가정 폭력도 없는 행복한 중산층 가정이 바로 마약 문제의 배경이 된다. 중독자도 다름 아니라 10대 청소년인 아들이다. 마약 하면 범죄 소굴을 떠올리던 것과 달리 평범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일반 가정에 마약 중독자가 있는 것이다.


‘벤이 돌아오다’라는 영화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하나는 표면적 의미 그대로 벤(루카스 헤지스 분)이 돌아온 것을 의미한다. 약물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재활원에 가 있던 큰아들 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집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 의미는 벤이 중독 이전의 평범하고 사랑스럽고 다정했던 가족 구성원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믿음직한 아들, 든든한 오빠 그리고 형이라는 가족의 일원으로의 귀환이다. 단순히 몸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약 중독에서 온전히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제목에 담겨 있다.


첫 번째 ‘백(back)’은 쉬워 보인다. 몸만 오는 것이 무엇이 어려울까 싶지만 사실은 이조차 쉬운 과정은 아니다. 갑자기 돌아온 아들을 보자마자 엄마는 무척 기뻐하지만 그것도 잠시. 혹시나 아들 눈에 띌까 봐 집안 상비약이나 주사기를 치우느라 바쁘다.

행여나 눈을 떼는 사이 아들이 투약을 할까 싶어 화장실이나 탈의실에조차 혼자 두지 못한다.


불안한 것은 아들 벤 역시 마찬가지다. 벤은 무엇보다 아직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 가족 곁에 돌아왔다는 것은 곧 사회로 복귀했다는 얘기다. 재활원과 달리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유혹이 너무 많다. 진정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약이 없는 상태를 참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약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일 테다. 벤 그리고 가족은 유혹에서 도망가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영화 속에서 벤은 피해자인 한편 가해자기도 하다.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한 여성은 “네가 나에게 마약을 팔았잖아”라고 말하며 그를 비난한다. 벤과 함께 중독됐던 친구 중에는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마약을 끊고 나서도 벤은 끝없이 고통받는다.


재활원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지옥과도 같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엄마는 줄리아 로버츠가 맡아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하지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마음, 또 아들을 지키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부모의 마음을 너무나도 절절히 보여준다. 약물 중독이 우리로부터 뺏어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 속 모자의 처절한 하룻밤은 이를 충분히 보여준다. 중독이 파괴하는 것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벤 이즈 백’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8호 (2019.05.15~2019.05.2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