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간판 없는 뒷골목 3층… 젊은이들 열광하는 힙플레이스

바람아님 2019. 7. 18. 06:48

(조선일보 2019.07.18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요즘 뜨는 곳, '아무나' 아닌 나만 아는 숨겨진 곳
소유보다 경험을 더 소중히 생각… SNS에 나만의 공간 구축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빈 상가가 늘고 있다. 대로변 1층 상가가 비는 경우도 많다.

상거래의 많은 부분이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상거래 총량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인터넷 상거래가 20% 늘어나면 실제 공간에서 필요한

가게 면적은 20%가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이제 수건·속옷·치약 등을 살 때 시장의 가게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어렸을 적 시장 한편에 있던 내복 가게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로변 1층 가게는 비어 가는데 을지로 뒷골목 2~3층에 있는 가게는 오히려 장사가 된다.

요즘 젊은이들의 힙플레이스는 을지로다. 이런 업소는 뒷골목에 간판도 없는 곳들이다.

힙플레이스는 핫플레이스와 다르다.

핫플레이스는 너도나도 가는 곳이라면 힙플레이스는 아는 사람들만 가는 흔히 '인싸'들만 가는 곳이다.

트렌드 리더들은 아무나 가는 곳은 원치 않는다. 그들은 명품 로고가 크게 찍힌 가방은 힙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숨겨진, 나만 아는 것을 찾는다. 숨겨져 있어서 극히 선택된 자들만 아는 곳을 선호한다.

그래서 요즘은 대로변에 큰 간판을 내건 가게보다는 뒷골목에 숨겨진 가게들이 더 힙한 장소가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날까? 정보통신 기술 발달 때문이다. 자세히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터넷상 정보와 GPS 기술 덕분에 이제는 뒷골목에 숨겨진 곳도 탐험하듯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대로변에 '눈에 띄는 것' 대신 그 장소가 주는 콘텐츠가 특별한 가치를 가졌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둘째, 힘들게 찾은 경험을 인터넷상에 올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특별한 경험도 나만 알고 있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희귀한 경험을 사진을 찍어서 내 SNS에 올리고 전 세계에 자랑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SNS 때문에 젊은이들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비싼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

대신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디지털 정보로 전환해 사이버 공간 속에 나의 SNS 공간을 구축한다.

이들이 올리는 SNS 포스팅은 한 장 한 장 쌓는 21세기 '디지털 벽돌'이고, 조명이고, 벽지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사무 공간도 단기간 빌려 사용하는 공유 오피스가 대세다.

심지어 오피스를 빌리지 않고 카페에서 일하기도 한다. 카페는 더 이상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멀티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스타벅스커피'에서 커피를 떼고 '스타벅스'로 간판을 교체했다.

식당에 직접 가기보다는 배달 앱으로 시켜 먹는다.

식당들은 대로변 1층에 가게를 내는 대신 뒷골목 건물 지하에 공유 키친을 열 것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대로변 상가 건물 3층 이상의 임차인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한동안은 이 넓은 공간을 기계로 채울 수 있는 헬스클럽들이 동네마다 들어섰다.

하지만 헬스클럽이나 공유 오피스로 메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데 안 바뀌는 것이 있다. 바로 정부의 토지이용계획도다.

100년 전 뉴욕은 고층 건물로 도시가 채워졌다. 수십 층의 건물에 층마다 다른 프로그램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하늘에서 보면 한 장소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개의 다른 기능이 중첩되어 들어갔다. 고밀도 주상 복합의 시작이었다.

엘리베이터 발명으로 생겨난 변화였다. 현대는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한 차원 더한 복합성이 생겨났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며 업무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화장실과 사무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다.

친구와 떠들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사무실에서 친구와 채팅을 한다. 공간이 중첩되고 융합되는 의미를 가지는 시대다.

어느 한 공간이 하나의 기능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오래된 2차원 평면적 토지이용계획도의 도시 공간을 고집하고 있다.

성수동 지하철역 주변에 1인 가구를 위한 주거를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땅은 상업지구로 지정되어 있어서 주거를 넣으면 용적률에 150%의 손해를 보게 된다.

결국 공실률이 생겨도 사무 공간으로 지어야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주변에 학교가 없어 학생을 늘리면 안 된다며 추가로 주거 시설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하는 시대에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 살 집인데도 말이다.

시대가 바뀌는 속도를 행정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들은 건축 도시 분야만이 아니다.

변한 세상과 구시대의 관점이 충돌하는 일은 정치·경제·외교·법률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래된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