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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청보리 연가

바람아님 2014. 4. 18. 12:50
보리밭에 봄볕이 쏟아진다. 겨우내 무채색에 길들여진 탓일까? 드넓은 벌판에 끝없이 이어지는 보리밭의 푸르름은 강렬하다. 한마디로 '안구정화'의 기쁨이다. 바람에 실려오는 풀 향기도 상큼하다.

파란 하늘과 경계를 이루는 초록 보리밭의 곡선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부드럽다. 구릉지 한가운데에 서 있는 원두막이 추억의 정취를 더한다. 보리밭 사이로 구불구불 한 줄기 길이 나있다. 걷기에 딱 좋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조화롭게 연결된다.

초록의 바다처럼 펼쳐진 보리밭을 바라보노라면 이곳이 곡식을 재배하는 농장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가요 '님과 함께' 가사에 등장하는 '초원'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컴퓨터 초기 바탕화면으로 등장하는 푸른 초원처럼 뛰고, 뒹굴고, 때로는 두 팔을 벌리고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초봄의 보리밭은 가족여행지로, 연인과 함께하는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애완견을 데려오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보인다. 바람이 불어오면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모두 사진 찍기에 바쁘다.

시골에서 자란 나이 든 세대라면 보리밭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갑돌이 갑순이' 식의 연가(戀歌)일 수도 있고, 배고픔이 얽힌 아련한 추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보리밭은 향수를 자극하는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보리밭의 추억을 상품화한 곳이 고창 청보리밭으로 알려진 '보리나라학원관광농원'이다. 고(故) 진의종 국무총리의 아들인 진영호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진 대표는 15만 평에 이르는 이곳을 봄에는 보리밭으로, 가을에는 메밀밭으로 조성해 국민축제마당으로 만들었다. 이웃들도 동참해 보리를 심으면서 고창의 보리밭은 30만 평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한 해 8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영화 촬영지로, 사진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로도 명성이 높다.

올해 11회째를 맞는 고창 청보리밭축제는 4월 19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린다. 4월 말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추억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가곡 '보리밭'을 흥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