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3. 23. 02:00 수정 2024. 3. 23. 22:34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26회>
“일견폐영(一犬吠影)하니 백견폐성(百犬吠聲)하더라”는 말이 있다.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니, 백 마리 개들이 떼로 그 소리를 듣고서 짖더라는 뜻이다. 허깨비를 보거나 거짓말에 속아 무리 지어 난동하는 우중(愚衆)을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諷刺)다....흔히 500~800명의 양민이 학살됐다 “카더라”는 “한강 다리 폭파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과연 그 비극적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으며, 무엇에 허망하게 속아 왔는가?
1950년 6월 28일 오전 2시 30분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던 순간 그 다리 위에 3인의 미국인 종군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탄 지프차는 발파 지점에서 불과 20야드(19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바로 앞의 2.5톤 군용트럭이 날아가면서 폭풍(爆風)을 막은 덕분에 뒤에 있던 세 사람은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바로 그날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수원에 도착해서 급히 작성한 기사문들은 곧바로 캐나다와 미국의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들의 기록 속에 “한강 다리 폭파 사건”의 진실이 담겨 있다. “슬픈 중국”에서는 앞으로 3회에 걸쳐서 이들의 기록을 샅샅이 검토해 보기로 한다.
왜 “슬픈 중국”에서 “한강 다리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가?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슬픈 중국”의 영향 아래서 “변방의 중국몽”을 꾸고 있는 정치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의 나라”라 칭송하고,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공언하는 바로 그 세력이다. 제후국으로서 황제의 나라를 천조(天朝)로 떠받들던 왕조사의 관성인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남로당의 영향인가? “위·수·김·동의 주체사상”에 세뇌당한 “주사파”의 잔존인가?....여전히 한국 정치권에선 바로 어제의 그 세력이 무리 지어 국사(國事)를 쥐락펴락하고 있기에. “슬픈 중국”과 한국 현대사는 떼려 해야 뗄 수 없다. 6.25전쟁이 단적인 사례다.
비치의 기록에 따르면, 3인이 군사고문단 사무실 소파에서 잠시 잠을 청하는데, 황급히 군인 한 명이 바지 단추를 잠그면서 뛰어 들어와서 적이 서울로 진입했다며 당장 수원으로 가라고 했다. 밖에선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세드베리 소장은 그들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리며 당장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가라 했다.
https://v.daum.net/v/20240323020017921
“한강 다리 폭파 사건”의 진실 (1)[송재윤의 슬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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