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그림이 있는 아침] 여인이 멈춰선 까닭은…

바람아님 2014. 10. 23. 20:43

 

 

에우제니오 데 블라스의 ‘물에서’(1914)


한 누드의 여인이 해변을 걷고 있다. 주변은 잔잔한 파도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이제 막 그리스 키테라 섬에서 탄생한 비너스일까.

가녀린 발로 쏴쏴 물을 가르던 여인이 발길을 멈췄다. 양팔의 제스처로 보아 그는 갑작스레 멈춰선 게 틀림없다. 무엇이 그의 발길을 붙든 것일까. 바로 발 아래 작은 물고기 무리다. 물고기의 행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마음과 그들의 아름다운 몸놀림을 살피려는 호기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 에우제니오 데 블라스(1843~1931)는 평범한 일상을 섬세하고 연민에 찬 시선으로 묘사한 화가다. ‘물가에서’는 그가 남긴 단 한 점의 누드화지만 그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 걸작이 됐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