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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4] 무카의 포스터

바람아님 2014. 10. 26. 10:48

(출처-조선일보 2009.12.22 김영나 서울대 교수·서양미술사)


JOB 담배 광고 포스터.


1870년대에 이르러 파리는 크게 변하고 있었다. 

큰 도로가 닦이고 여러 곳에 시민을 위한 광장과 공원이 마련되었다. 

새로 개발된 재료인 강철과 유리,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파리는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파리의 거리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준 것은 곳곳에 붙은 포스터였다. 다색석판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대담한 색채와 윤곽선을 강조한 포스터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아방가르드 미술가들도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예술성과 상업성을 복합할 수 있는 포스터

제작을 시도하면서 미술을 생활 속에 끌어들이려 하였다. 처음에는 문학잡지나 연예가 

광고의 중심이었던 포스터는 곧 상품 선전이나 공연 광고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여성의 이미지가 포스터에 크게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체코에서 온 무카(Alphonse Mucha)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6년간 도맡아 제작하여 주목을 받았다. 약간 벌린 입술, 창백한 피부, 현란한 의상으로 위험스럽지만 신비한 관능미를 

드러내는 베르나르의 포스터는 당시 유행하던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팜므 파탈은 매력적이면서 남성을 파괴로 몰고 가는 여인을 뜻하며, 대표적 인물로 살로메, 유디트, 메데아가 있다. 

이들은 미술뿐 아니라 문학, 오페라의 주제로도 인기를 끌었다. 팜므 파탈 이미지에서 중요한 표현은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은 유혹과 타락을 의미하고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힘의 상징이 되었다.

무카가 제작한 JOB 담배의 광고 포스터에서 숱이 많은 긴 머리카락과 반쯤 감은 눈, 입을 살짝 벌리고 손에 담배를 쥔 

여성은 유혹적이면서 도전적이다. 

대중화된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이후 1930년대 유명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그레타 가르보와 같이 요염하면서도 

신비스럽고 또 냉담해 보이는 영화배우들의 사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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