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찬킹청의 중국정치 뚫어보기⑬ 중국과 무역에 반대하는 대만의 학생시위

바람아님 2015. 1. 5. 23:20

(출처-조선일보 2014.05.17 찬킹청)


중국과의 서비스 무역 협정에 반대하는 대만 학생들은 입법원을 점령하고 나섰고, 
총통부(청와대에 해당) 앞에서는 거리시위까지 벌어졌다.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만 전역이 주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세계 언론이 모두 여기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사태의 진전 외에도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으로 학생운동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
“대만에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중국이 대만보다 더 많은 분야를 개방하게 되는 등 대만에 이익이 되는 
무역협정으로 보이는데, 왜 학생들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나 반대하는가?”

중국은 대만에 호의적인 제안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긍정적인 대답이 아닌 학생운동이었다. 
이는 홍콩에 자유은행을 개설할 때와 같은 양상이다. 
홍콩에 이익이 되는 정책이었건만 홍콩 중문 대학이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57%의 홍콩인이 자유은행을 축소할 것을 
요구한다고 나오는 등, 홍콩 사람들의 반대가 거세다. 대만 및 홍콩에 대한 중국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대만과 중국의 서비스 무역 협정 비준에 반대하는 대만 대학생들이 대만 타이베이 입법원(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한 모습./블룸버그
대만과 중국의 서비스 무역 협정 비준에 반대하는 대만 대학생들이 
대만 타이베이 입법원(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한 모습./블룸버그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세계의 생산 및 무역의 판도가 뒤바뀌게 되었다. 
또한 중국·홍콩·대만 간의 관계가 역전되었다. 
과거 홍콩은 중국 내륙과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당시 전 중국의 무역 및 자금의 유통이 홍콩을 거쳐 갔다. 
이렇게 유리한 입지조건으로 인해 홍콩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자금과 기술, 경영진은 모두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고, 
융자도 홍콩을 거쳐야 가능했다. 
이로써 홍콩은 중국의 사업을 대부분 독점했고, 1980년대 홍콩 경제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을 실시한 지 30년이 흐른 지금은, 
홍콩만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중국의 도시들도 할 수 있게 되면서 홍콩은 독점적 지위를 잃고 
수많은 중국 도시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무역에서 많은 경쟁우위를 잃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다른 도시와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자 외국 기업은 중국에 직접 들어가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홍콩이라는 이 중간지대는 필요가 없어졌다.

중국 내륙 사람들의 홍콩 여행을 허용한 본래 목적은 
홍콩의 소매, 요식업 등 서비스업 경기를 개선하여 일자리를 늘리기 위함이었다. 
1997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로, 중국인 여행객들이야말로 홍콩경기를 되살릴 구세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자유여행의 확대는 기술이 필요 없으며 낮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의 일자리만을 늘렸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의 홍콩의 평균 임금 및 가계 소득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상승 폭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 
과거 십여 년간 창출된 일자리가 홍콩 서민의 살림살이를 펴주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중국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홍콩의 소매업이 활기를 띠기는 했으나 소매로 창출할 수 있는 이윤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사실,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들은 많은 상가 부동산을 보유한 부동산업자들이다. 
임대료가 계속해서 오르면서, 자유여행 확대로 발생한 이윤이 부동산업자들의 손으로 떨어진 것이다. 
자유여행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이는 홍콩경제구조를 고도화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도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낮은 임금의 업종에만 종사하고 있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해 홍콩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중국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현재 대만이 겪고 있는 일들은 홍콩의 경험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입법원을 점령한 대만 학생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바로 젊은이들이 매달 소득이 22,000위안(약 75만원)에 불과한 
22K 세대를 벗어나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생활을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과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무역 개방을 주장한 마잉주 대만 총통을 지지하며 침체에 빠진 대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그 결과 많은 대만 무역상들이 중국에 진출했으며, 농산품을 포함한 대만 상품들이 중국 각지에서 
팔려나가게 되면서 대만 경제는 다시금 생기를 띄었다. 
이렇듯 경기는 개선되었는데 어째서 대만사람들의 소득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중국의 한 네티즌이 이 현상을 정확히 분석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8년 국민당이 집권한 이래로 양안 관계가 대폭 개선되었다. 
하지만 양안을 오가며 활동하는 대만재벌들이 국민당과 정경유착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양안 무역의 노른자를 독점하게 되었다.
게다가 대만의 무역상들은 국민당 고위간부를 통해 중국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분쟁을 해결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나누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뇌물이 오가는 일까지 일어났는데, 이 모든 것들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행해졌다. 이 무역상들은 선거철에는 국민당을 위해 선거운동에 나서기까지 했고, 
이익과 권력의 유착으로 양안 무역이 친(親)국민당 무역상의 배를 불리는 무역으로 변질하였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어떠한 이점도 누릴 수 없었으며 오히려 22K 세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한 대학생들이 어떻게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을 반대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대만의 여러 산업이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노동력수요가 감소했고 이로 인해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산업구조가 이렇게 변화할 때에는 서비스업·금융업 및 고부가가치 산업과 같은 3차 산업의 발전이 수반되어야 
노동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대만은 이 부분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은 대만 서비스업의 중국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서비스업의 경우, 대부분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하고 현지에서 소비가 이루어져 
결국에는 현지의 GDP 증대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대만 본토가 이윤을 누릴 수 있을까?

세계화로 인해 무역이 확대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며, 효율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하며 자금이 국제적으로 이동하며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 무역은 승자독식의 원리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윤과 모든 부가 일부 ‘성공자’에게 편중되고 있다. 
반면, 대부분 사람은 이를 누리지 못하게 되어 개방과 자유무역에 반대하게 된다. 
대만의 학생들이 서비스무역 협정에 반대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빈부격차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러한 학생운동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