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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칼럼] 한·중은 역사적 전통에서 혁신 모델 찾아야

바람아님 2015. 1. 4. 10:40

[중앙일보 2015-1-3 일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중 경제 교류가 확대되면서 양국의 협력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경제 교류뿐 아니라 문화 및 교육 협력 프로그램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두 나라의 교류는 경제 및 환경 위기 시대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예를 들면 문화 교류에서 그치지 않고 두 문화에 숨겨진 좋은 선례를 찾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동양 전통에 나타나는 지속 가능성, 사회적 화합에 서양의 전통적 강점인 기술과 과학을 접목한다면 문명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세계 역사상 매우 훌륭하고 혁신적인 통치제도를 구축했다. 이런 전통과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에 적용 가능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크게 견제와 균형을 통한 선정(善政), 외교 전략, 농업을 통한 지속 가능성, 교육 네 분야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견제와 균형을 통한 선정을 살펴보자. 과거 한국과 중국의 과거시험 같은 관료선발제도, 중앙·지방정부 간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큰 교훈을 준다. 일반적으로 근대 이전의 한국과 중국은 민주주의와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란 고대 그리스의 시민에 대한 개념과 중국 전통의 행정기관 및 법치제도가 수렴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과거 한국과 중국에는 효과적인 공무원의 시험과 배치, 이동 제도가 많이 있었다. 이를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일부 수정해 적용한다면 현대사회의 부패 척결과 선정 확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를 보장해주는 훌륭한 제도도 많았다. 한·중 역대 왕조의 모범사례를 비교연구하면 오늘날 정부 개혁을 위한 구체적 아이디어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시험제도를 통해 의욕 넘치고 헌신적인 정부 관리를 선출했다. 특히 과거시험은 정부 내 부패 척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앞으로 중국은 이질적 문화의 이른바 ‘서방’ 모델을 좇기보다 과거를 재해석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혁신을 추구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외교 분야를 살펴보자. 동아시아의 외교·안보 구조는 서방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경우가 많다. 많은 아시아 외교 전문가는 우리가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만 이는 역사적 지식이 빈약해 생기는 오해다.

동아시아는 지난 600여 년 동안 유럽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국가 간 평화를 유지해 왔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에 크게 의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송나라는 백제나 고구려 등 여러 나라와 복잡한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서방의 냉전체제와 달리 평화적인 분쟁 해결을 통해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했다. 류큐 왕국, 요나라, 북위(北魏)에서도 미래의 새로운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데 활용할 만한 좋은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농업을 통한 지속 가능성이다. 땅과 물, 인구의 역사를 검토해보면 한국과 중국에는 유기농 농업에 관한 귀중한 선례가 많다. 양국 모두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 많은 도시 인구를 먹여 살린 전통이 있다.

전 세계가 생태계의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 이 역시 동아시아의 사례에서 배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서울은 20세기까지 최소한의 에너지 사용과 100%에 가까운 재활용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생태도시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교육 부문을 살펴보자. 과거 한국과 중국에는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아동 및 성인 교육법이 많았다. 수세대에 걸쳐 발전해 온 전통적인 읽기와 쓰기, 암기, 토론 방법이 그것이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현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유교 교육의 중심에는 현대사회와 달리 윤리가 있었다. 배움의 윤리적 의미는 현 교육 시스템에 다시 도입돼야 할 소중한 가치다. 한·중 전통 교육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평생에 걸친 사제관계 역시 오늘날 본받아야 할 역사적 자산이다.

 한국과 중국은 기술과 제도,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복잡한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근대 이전 전통과의 연속성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양국 역사 속의 다양한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한 도전에서 새로운 정책과 기술, 제도에 대한 단서를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르네상스 시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장점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한국과 중국 전통의 장점이 다시 한 번 부각되기를 기대해본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