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빛 리모델링 … 밤만 되면 새 건물이 솟는다

바람아님 2015. 2. 3. 12:19

[중앙일보 2015-2-3 일자]

거리 생기 주는 ‘미디어 파사드’
신세계백화점 야경 연출한 고데
“오랜 건물은 도면 없어 3D 스캔
빌딩 몸에 꼭 맞는 영상 입히죠”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서울스퀘어 빌딩(옛 대우빌딩)에는 공통점이 있다. 남대문 시장 인근에 자리 잡고서 각각 일백 년, 오십 년 가까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켜봤다. 건물의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리노베이션한 점도 비슷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건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를 선보여 둘 다 화제가 됐다. 밤만 되면 신세계 본점 창문에는 눈이 쌓이고 고드름이 쑥쑥 자랐다. 서울스퀘어 빌딩에는 키 높이만 수십m에 달하는 사람들이 건물 외벽을 걸어다닌다.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미디어 파사드’ 작품이다. 미디어(Media)와 파사드(정면·Facade)의 합성어로 건물의 정면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이는 기법이다. 외벽에 프로젝터로 영상·빛을 쏘거나(신세계 본점), LED 전광판을 설치하는(서울스퀘어 빌딩) 식이다. 오래된 건물에 빛·영상으로 만든 이미지를 덧씌워 새롭고 낯설게 하는 게 목표다.

신세계 본점의 작품 ‘겨울 휴가(Winter vacation)’를 디자인한 프랑스의 마리 장 고데(54)를 최근 e메일 인터뷰했다. 유럽에서 3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미디어 파사드는 조명·영상·정보기술(IT)을 결합한 21세기 건축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말했다.

고데

 

 마리 장 고데가 전한 미디어 파사드 작품의 핵심은 실제 건물처럼 보이는 영상에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건물을 통째로 3D 스캔해 골격 영상을 만든다. 그는 “주로 오래된 건물에 작업을 하다 보니 도면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을 통으로 스캔해서 3D 영상으로 재현하고 스토리를 입힌다”고 설명했다. 신세계 본점의 경우 건물과 영상이 하나로 일치되어 있다가 눈이 쌓이고 건물이 흔들리는 이미지로 점차 변해간다. 그는 “본점 맞은편 건물 옥상에 고화질의 프로젝터 20여 대를 설치해 영상을 쐈다. 작품마다 고유의 장소성을 갖기 때문에 다른 건물에서 재현할 수 없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미디어 파사드 작품을 도시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파리시에서는 2015년 새해 맞이 행사로 개선문에 파리의 유명 건축물(퐁피두 센터 등)을 투사하는 미디어 파사드 작품을 설치했다. 첫 여성 시장인 안 이달고는 SNS를 통해 이 영상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리옹시의 경우 1989년부터 미디어 파사드를 토대로 한 ‘빛 축제(Fete Des Lumieres)’를 개최해 쇠락한 도시를 살려냈다. 매년 12월 초에 열리는 빛 축제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400만 명이 몰린다. 리옹시 인구 50만 명의 여덟 배에 달하는 방문객 수다. 나흘간의 축제에서 오래된 건물이 많은 구도심의 광장·시청·오페라하우스 등 70~80여 곳에 미디어 파사드 작품을 설치한다. 마리 장 고데는 “매년 12월 8일 성모 마리아 수태일을 기념해 집집마다 촛불을 켜던 것에서 착안해 축제가 시작됐고, 최신 기술이 융합한 축제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빛 축제 메인 광장인 ‘떼로 광장’에 선보인 ‘황홀한 밤’으로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다. 광장 중앙에 있는 말 동상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시청과 시립 미술관으로 다섯 마리의 말이 뛰어들어가고 건물도 그에 따라 휘어지며 변한다. 마리 장 고데는 “8분간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오래된 건물이 살아 날뛰는 듯한 이미지를 갖고 돌아갔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쇼”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마리 장 고데=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시각예술과 비디오 아트 공부. 1991년 ‘라이트모티프’ 회사 창립. 2008년부터 리옹 ‘빛 축제’ 참가. 크리스찬 디올의 마드리드 플래그십 스토어, 두바이 아틀란티스 호텔의 미디어 파사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사진설명

[사진 1]
2011년 프랑스 리옹시에서 열린 ‘빛 축제’에서 마리 장 고데가 선보인 미디어 파사드 작품. 8분여 진행된 쇼에서 메인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이 빛·영상만으로 휘어지고 뒤틀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사진 마리 장 고데]

[사진 2] 겨울 시즌을 맞아 서울 신세계 본점에 설치한 마리 장 고데의 작품.

[사진 3] 프랑스 소도시 오를레앙의 대성당을 배경으로 선보인 작품.

[사진 4] 파리시에서 올해 신년 맞이 행사로 개선문에 설치한 작품. [사진 신세계백화점, 마리 장 고데, 안 이달고 시장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