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23 노석조 국제부 기자)
반미(反美) 국가인 이란의 고위 당국자도 꼬박꼬박 챙겨 본다는 일류 신문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공개적으로 과거 자신들의 기사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세계 독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NYT는 93년 전인 1922년 11월 21일자 기사에서 당시 독일의 신흥 정치인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를
우호적인 뉘앙스로 서술하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문제의 '히틀러 기사'는 그날 전체 40면 신문의 18면에 2단으로 실렸다. 제목은 '바바리아
문제의 '히틀러 기사'는 그날 전체 40면 신문의 18면에 2단으로 실렸다. 제목은 '바바리아
(독일 바이에른의 영문 표기)에서 새로운 민중의 우상이 떠오르다'였다.
'히틀러의 반(反)유대주의는 소문처럼 진심 어리거나 폭력적이지 않으며, 단지 대중을 끌어당기고
흥분시킬 미끼 같은 선전용 구호일 뿐이다'는 내용이었다. 훗날 유대인 수백만명을 집단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사상적 도구가 된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행태를 '별것 아니다'는 식으로 잘못 분석하는
기사를 냈던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NYT는 "핵심적인 부분이 매우 잘못됐다"고 뉘우쳤다.
NYT의 '고해성사(告解聖事)'는 이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NYT의 '고해성사(告解聖事)'는 이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독일의 새로운 권력자 히틀러'라는 제목의 1923년 1월 21일자 기사, '히틀러가 감옥에서 길들여졌다'는 제목의
1924년 12월 21일자 기사도 공개했다. 쿠데타를 시도하기 직전 상태였던 히틀러를 '새로운 권력자'라고 평가하고, 쿠데타
실패로 1년간 투옥한 뒤에도 극우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결국 정권을 거머쥔 그를 '길들여졌다'고 속단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당신네 신문이 과거에 잘못 썼던 거를 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오류를 언론 감시 단체 등이
"당신네 신문이 과거에 잘못 썼던 거를 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오류를 언론 감시 단체 등이
먼저 지적해 정정 보도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신문이 자발적으로 별도의 특별팀을 만들어 과거 기사에서 오류를 찾고,
그 결과를 홈페이지의 특정 코너에 공개한 것이다. 그 코너를 보면 1910년대에 신인이었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에 대해
'괴짜' '미치광이', 그의 작품에 대해선 '어린애 장난 같은 낙서는 어떤 흥미도 주지 않는다'는 기사를 썼다는 애교 섞인
자책성 기사도 있다.
NYT의 깨알 같은 '반성(反省) 기사'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속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신뢰'였다.
NYT의 깨알 같은 '반성(反省) 기사'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속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신뢰'였다.
누구도 모를 90여년 전 자신의 썩은 부위를 드러내고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이를 과감히 도려내는 모습에서 '양심적이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뢰란 것이 머리에서 오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NYT가 논리적으로 '히틀러는 당시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 구석이 있었기에 이런 기사를 썼다'고 또박또박 변명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머리로는 수긍했을지 모르지만 '구차하다'고 느꼈을 듯하다.
이는 신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당장의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의 얼룩을 교묘히 덧칠하려 하기보다 솔직히 이를
이는 신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당장의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의 얼룩을 교묘히 덧칠하려 하기보다 솔직히 이를
드러내고 진실되게 반성할 때 그 사람 역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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